백제가 몹시 궁금했다. 뭔가 잃어버린 유물 같은 단어였고 쓸쓸함과 비애가 묻어 있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하였다.(삼국사기) 정약용,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하였다.(여유당전서 제6집 지리집 제2권 강역고 변진별고)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다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었다.
위례 / 몽촌토성 발굴장면
당초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 사비성 낙화암부터 방문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을 바꾸어 수도 존립 순서대로 위례성(서울 한성), 웅진성(공주), 사비성(부여)을 차례로 탐방하기로 변경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백제의 수도 이전, 위>웅>사다. 백제의 부흥과 쇠퇴기를 몸소 체험하는 것이 옳은 순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제의 전성기 / 풍납토성 몽촌토성 유물
백제의 수도 변천을 잠시 살펴본다.
백제의 웅진 천도
한성 위례 도읍기
BC 18~ AD 475 (고구려 장수왕 3만 공격, 한성 함락 및 백제 개로왕 전사)
고구려의 대로 제우, 재증걸루, 고이만년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성(풍납토성)을 공격한 지 7일 만에 함락시키고, 남쪽 성(몽촌토성)으로 옮겨 공격하자 성 안이 위험에 빠지고 왕은 도망하여 나갔다.(삼국사기 권 제25 백제본기 제3 개로왕 21년 가을 9월)
백제 건국 / 위례 웅진시대
웅진 도읍기
AD 475~ AD 538 (백제 문주왕 천도, 공주)
사비 시대
사비 도읍기
AD 538~AD 660 (백제 성왕 18년 천도, 의자왕 사비성에서 나와 웅진성에서 항복 및 백제 멸망, 부여)
웅진 사비 / 백제 멸망
관련 역사에 접근하려면 먼저 박물관 방문이 첫 번째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8호선 지하철 몽촌토성역에서 내려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2024.09.28., 토 맑음, 28도).
올림픽공원
한성백제문화제 (2024.09.27~09.29)
몽촌토성과 올림픽공원에 위치해 있다. 마침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제24회 한성 백제 문화제(2024.9.27.~29)가 열리고 있었다. 적극 참여하는 의미에서 손주 녀석에게 선물로 줄, 손바닥 크기의 공중부양 나르는 독수리 연을 샀다. 김밥과 구운 계란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식후 금강산이라, 배가 불러야 구경도 재미있다.
풍납토성
위례성은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 속에서 한동안 방치되고 훼손되어 잊혀 있었다.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도 추정하거나 이름만 전하여져 오다가 1925년 대홍수 때 풍납토성 일부 구간이 훼손되어 청동자루솥과 귀걸이 구슬등이 쏟아져 나왔다. 1997년 풍납동에서 아파트 공사 중 백제 유물들이 확인되어 이때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궁궐일부와 관청, 집터, 도로, 우물, 연못, 창고 등 확인되었다. 토기와 기와등 유물 십여 만점이 나왔다. 베일에 싸였던 백제 첫 왕성은 풍납토성이었다. (한성 백제 박물관 자료)
몽촌토성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풍납토성의 보조성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평상시에는 풍납토성에서 생활하다가, 위기 시에는 몽촌토성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양과 남한산성의 관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즉 풍납토성( 첫 백제 왕성, 북성 北城)과 몽촌토성(남성 南城)으로 이루어진 2성 체제였다. 풍납토성(風納土城)은 평지성(平地城)이며 평소의 거주성이고, 몽촌토성(夢村土城)은 유사시에 대피하는 산성(山城)이었다.
백제가 웅진성으로 천도 후, 고구려 다시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지배자가 계속 바뀌었다. 주민들이 집 짓고 생활하여 사실상 백제의 흔적과 유물이 땅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현재 풍납토성은 잔디로 덮인 긴 제방형 뚝형태의 일부 토성을 제외하고는 토성 경내는 이미 아파트 연립등 주거지로서 사용되고 있다. 곳곳에 재개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경주예로 보면, 재개발 재건축을 위하여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나와 시내 곳곳에 접근금지 테이프가 펄럭이고 있다. 옛날 경주의 땅아래는 거대한 문화 유물군이 잠자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 체계적인 보상을 하고 외곽으로 이주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백제의 배 / 백제의 하이테크 신 무기
몽촌토성은 88 올림픽 때 경기장과 공원을 조성하기 위하여 1983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지상건물, 집터, 저장 구덩이, 연못, 목책, 각종 토기와 철기, 뼈로 만든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중국 남조의 동전무늬 도기와 금동제허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다. 고구려의 네 귀 달린 항아리 등 고구려 토기도 발견되어 한성 함락 후 몽촌토성에서 고구려인들이 생활했다.(한성 백제 박물관 자료)
석촌 고분과 롯데월드 타워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탐방 후, 마지막으로 석촌동 고분군을 탐방하였다. 도보 약 2만 5 천보 거리로 석촌동 고분군 촬영 시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한 고분군의 야경이 멋있었다.
탐방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한성백제박물관> 몽촌토성> 풍납토성> 잠실 석촌호수(인조 삼전도비)>석촌동 고분군
한성 백제 박물관
한성 백제 박물관 (漢城 百濟博物館)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 구역 내에 있다.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에서 남 2문 방향으로 650m (도보 10~15분) 거리에 있다. 2012년에 개관하였다. 위례 한성은 정궁이 있는 북성(풍납토성)과 별궁이 있는 남성(몽촌토성)으로 구성된다. 박물관 건물 외형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모티브로 삼았다.
전시실 안내
지하 2층
강당, 정보자료실, 강의실, 주차장, 물품 보관함이 있다.
풍납토성 축성 / 단면도
지하 1층
지하 2층 로비 수직 측면에는 축성공사 현장을 재현한 인물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사력을 다해 수행하고 있다. 열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흙으로 만든 거대한 풍납토성 성벽 단면이 보인다. 너비 43m, 높이 9~11m의 풍납토성 건설현장이다. 15톤 덤프트럭 16만 8000대 분량의 흙과 약 224만 명이 동원된 토성이었다. 축조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안내 데스크와 기획전시실이 있다. 외부 특별전시 대관가능하다.
한국인의 조상과 유물 분포
제1전시실
문명의 기원과 백제의 여명을 보여준다.
백제국 유물
1층
백제의 영토 확장 / 문화제
제2전시실
왕도 한성 (백제의 건국 / 더 큰 나라로 / 백제사람의 삶 / 글로벌 백제) 전시 및 상설전시실이 있다.
삼국 복장(세로 꼬리 화살표 설명판 : 좌에서 우로 신라 고구려 백제 순) / 동아시아 관계도
제2 전시실은 백제의 건국과 성장의 시기였던 한성도읍기 493년의 역사 기록하고 있다. 풍납토성, 몽촌토성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칠지도 / 무덤 껴묻거리
백제의 옷 / 풍납토성 경당지구 건물모형
이어 백제 사람들의 의식주, 그릇과 기와, 옷차림 등 삶의 모습을 엿보고 주변국과의 교류에 대하여 보여준다.
백제금동대향로
제3전시실
삼국이 한강을 향해 격돌하는 하며, 그 후를 보여 준다. 영상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상영한다. 제3 전시실은 한강에서 벌어진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의 각축과 한성 함락 이후 백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서울에 남아 있는 고구려, 신라 유적의 위치와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고, 한성(서울)을 빼앗긴 뒤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서 국력을 다시 기르며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 후기 역사를 전시한다.
부여 사택지적비 / 부여능산리 석조사리감
2층
몽촌토성이 보이는 하늘정원, 야외전시공간이 있다. 카페테리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음료를 마시며 공원과 몽촌토성을 감상할 수 있다.
몽촌역사관
한성백제박물관의 부속 시설이다. 본래 몽촌토성에서 발굴한 유적을 전시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현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를 하고 있다.
조각 공원 / 해자와 몽촌토성
박물관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조각 공원 곳곳에서 가족들이 돗자리 위에서 한가롭게 즐기고 있었다.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해자를 끼고 시계방향으로 몽촌토성 위를 돌기 시작했다.
글이 길어져, 다음 회에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그리고 석촌고분 방문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이어서 웅진(공주)과 사비성(부여) 방문 결과에 대하여 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