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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민 Jul 17. 2022

환상의 키스

환상 시리즈 Ep.1



"그래, 나는 이곳으로 살기 위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내가 이곳에 와서 뭔가 죽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이곳 스페리온은 언제나 밤이 되면 주황빛 가로등이 도시를 밝혔다. 그 주황빛 가로등은 어찌나 따뜻해 보이는지 저녁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따뜻해 보이는 거리에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나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왁자지껄 웃고 떠든다. “형씨! 오늘도 고생 많았어, 오늘 한 잔 할까?”, “여보, 오늘은 아이들도 없는데 와인 한병 사갈까?”, “이번에 너 반에서 일등 했다면서! 한 턱 쏴!”.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나도모르게 활기가 돋는다. 아니,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지 않아도 그들은 삶이 행복하다는 듯 웃고 떠든다. 그야말로, 꿈에서나 그리던 장소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이곳이 낯설어 보이는지 거부감마저 드는 것일까. 왜인지는 모른다.그저, 나를 끊임없이 괴롭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과연,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곳일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답답함이 나를 옥죄어 올 때마다 도시에서 벗어나 10분만 걸어서 나오는 공원에 간다. 그 공원의 이름은 ‘알레데이아’, 등꽃과 버드나무가 멋들어지게 피어있는 곳이다. 이곳은 저 도시에 따뜻해 보이는 주황빛 가로등이 없다. 그저 흐릿하지만 진짜세상을 보게 해주는 달빛만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드디어, 숨이 쉬어진다. 나를 옭아매던 답답함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자유한 숨결만을 차분히 내쉬고 있었다.


역시, 오늘도 거리의 사람들은 항상 웃고, 기뻐하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처음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여기에 오기 전, 나는 가로등 빛은 사늘하기만 하고, 사람들은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곳에서 살았다. 게다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 모습이나로서는 그곳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는 곳을 옮기면 분명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밤잠 줄여가며 일하고 모은 돈으로 이곳에 이사를 왔다. 처음, 이 도시에왔을 때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 길거리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름다워보였다. 게다가, 주황빛 가로등은 마치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햇빛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옆을 둘러봐도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있으면 평생 힘들게 혼자

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이 도시에 이사하고 1년이 지났다.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3년이 지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았다. 5년이 지났다. 사람들이 점점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해 회사를 꾸렸다. 7년이 지난 후에는 회사가 궤도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하고 존경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8년이 지난지금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마치, “남들이 웃어 보이니까 자신들도 모르게 덩달아 웃는 곳이 아닐까?”, “나는 없고, 그저 우리만 있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들이 문득들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이야기를 하면, 내가 생각한 것이 잘못인 마냥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즐거우면 된 거 아니에요?”, “생각 복잡하게 사시네!”,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등 마치, 내가 이곳에 이방인이 된 듯싶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요새 일이 바빠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보다”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숨은 안쉬어지며 누가 목을 조르듯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들, 이곳이 즐겁고 행복한데 마치 오류 난 컴퓨터 마냥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들을 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찾은 곳이 바로 이 공원이다. 잘 정돈된 도시와는 달리 정리가 안된 나뭇가지들은 자기 멋대로 뻗어있었고, 가로등 하나 없이 오직 달빛만이 공원을 비추고 있었다. 그 푸른 달빛이 비치는 곳에는 덩그러니 나무 벤치 하나만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벤치 주위에는 밑으로 길게 축 내려진 등꽃 나무와 버드나무들이 큼지막하게 그러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뽐내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서 그런지 등꽃나무의 보랏빛 잎은 더 찬란해 보였고, 버드나무의 초록색 잎은 더 생생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달빛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힘겹게 소리 없는 외마디를 읊조려 본다.

“나만 이상한 놈인가..”


눈을 떠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어느덧 저녁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이만하고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자. 내일은 쉬는 날이니 맛있는 것 먹고 털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자리를 일어나고 도시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뒤돌아보니 어떤 여성이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여성은 무릎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상체는 그 여성의 아름다운 몸선이 보이게 딱 달라붙는 옷이었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면서 치마는 상체와 상반되게 한없이 나풀 거리는, 마치 순백의 나팔꽃처럼 나풀거리는 치마였다. 게다가, 하얀 원피스는 푸른 달빛을 머금어서 그런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온몸에는 전율이 흘렀으며, 나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듯 그 여성에게 고정이 되어버렸다. 사실, 몇 달 전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는 바람에 마음에 공허함이 남아 있었는데, 그녀를 본 순간 나의 모든 마음이 꽉 차버렸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수 있을까? 사랑이 아니면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큰 어떤 감정이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몸과 정신만은 알 수 있는 특유의 그런 감정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앉아 있었던 벤치 주변에는 등나무와 버드나무가 축 내려와 있어 외부는 잘 보이지 않아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가 내게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그녀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눈을 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다. 마치,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눈을 떼는 것 자체가 유죄인 것처럼 나의 눈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덧 그녀와 나는 성인 남자의 한 걸음 정도의 거리만 남겨두고 좁혀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버렸었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후에는 그녀의 모든 것에 압도되어 버렸다. 아니,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녀를 보면서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렸다. 오직, 나와 그녀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어서 얘기했다. “당신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엇이라고 얘기했는데 들리지 않아서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눈을 뜨고 달을 보던 당신을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따라 하는 동안 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다가오게 되었네요”. 그렇게 얘기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까지 들으니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뜨거움의 정체는 부끄러움인지, 창피함인지, 기쁨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는 모습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아름다웠고, 나는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나와 그녀가 한 존재가 된 것처럼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눈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그리고 나도 그녀의 눈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서로가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알았다. 서로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각자가 진정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뭐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숨결은 자유를 갈망했고, 서로의 마음은 정을 원했으며, 서로의 머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고 싶어함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숨결이 들렸다. 우리의 주위에는 보랏빛 버드나무와 버드나무는 정갈한 도시와 정반대로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는 도시의 따뜻해 보이는 주황빛 가로등도 없었다. 그저, 투명하게 빛나는 달빛만이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와 그녀만 있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것을 원하며, 같은 숨을 내쉬고 있는 서로만 있었다. 나와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도시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 입맞춤은 멋있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때에 문득 찾아왔다. 하지만, 그 입맞춤으로 인해 내 안에 무엇인가 깨고 나왔음을 느꼈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와 진실을 보게 했다.


나는 언제나 정을 원했고, 자유를 원했으며, 세상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이전에 살던 곳에는 정을 몰랐기에 스펠리온이라는 이 도시에 왔다. 그렇게, 정을 누렸지만 자유는 없었다. 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생각만 갖는 것이 내게는 답답함이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여도 내게는 반쪽짜리 진실로 밖에 안 보였다. 그래서, 진실을 알고 싶어서 질문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이나 나의 질문은 웃기는 소리로 여겨졌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이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알아버렸다. 결국, 진실은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고,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실이며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나에게 아무리 따뜻함을 주는 곳이어도 내가 추구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들 주위에 살아도 내가 추구해야만 한다. 아무리,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얘기해도 내가 추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추구한 것들로 살아야 나는 비로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틀리거나 달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내게 자유이고 진실이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내게 “잘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떠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왠지 모르는 후련함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다시 밝아 보이는 도시에 돌아가기 위해서 걷기 시작했다. 저녁을 못 먹어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음식점이 문을 닫았을까 걱정되어 시계를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시계의 시곗바늘은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그녀와 입을 맞추고 모든 경험이 환상이었어도 상관없다. 그저, 동굴에서 벗어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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