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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민 Aug 17. 2023

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내 인생의 데이터 베이스

 숱한 말들 중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 말들을 빚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사랑으로 계속해서 빚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노력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아름다운 말들을 만들기 위해서 문단을, 문장을, 단어를, 음절을, 그리고 음소를 수천 번 고쳐 쓰는 노력을 한다. 더 나아가, 그 노력으로 만들어진 말들은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서 단어들을 쓰거나 입력하는데 그들의 정신과 노력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에, 말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태어났고 수정되어 가면서 생존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은 없다.


 하지만, 담지 말아야 할 의미를 담아서 말을 하는 것은 죄가 있다. 죄라기보다는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있다. 그 부끄러움은 내가 기록하면 기록할수록 더욱 많아지고 내가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많아진다. 왜냐하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해석되어 가면서 의미가 변색되기 때문이다. 이 변색은 화장실 타일 사이를 이어주는 줄눈에 노랗게 또는 까맣게 뒤덮듯이 덮는다. 이처럼, 원래의 글의 의미는 도대체 보이지 않고 완전히 독자의 입장의 해석으로 덮이게 된다. 그래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글은 독자에 의해 부끄러움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되어가며 그것을 견뎌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사실, 원작자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환상이자 신기루이다. 원래의 의미가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전체주의식 해석의 시선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통일된 의미는 없는 것이냐? 또, 그런 것도 아니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서 해석은 결국 '내'가 속해 있는 전통 또는 역사라는 과거의 지평과 '나'의 현재의 지평과의 융합을 통해서 전통으로 인해 통일된 해석 그러나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고 한다. 가다머의 기반을 조금 빌려서 말하자면 결국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정신으로 글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리쾨르는 다음에 말하자)


 매번,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들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읽고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평대로 그 글을 읽고 원래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럴 때도 필요하지만 소비하는 글이 아닌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요구하는 글을 보게 된다면, 분명한 것은 잠시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어느 공동체의 정신으로 또는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그 글의 다른 방향성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 아픈 작업이지만, 최소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쓰는 것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나는 남의 글을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지 않기 위한 조금의 노력을 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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