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은 무엇이고,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게일 허니먼의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by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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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올리펀트. 30세. 회계 담당의 평범한 회사원.


사람들은 대개 평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엘리너는 평범의 틀이라도 갖추고자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녀의 직장동료들은 스스로를 노멀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엘리너를 괴짜라고 생각하고 커피타임 이야깃거리로 그녀를 씹는다. 엘리너가 스스로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그럴 가치도 없는 애야, 알지, 아가? 어린 시절 정서적 또는 물리적으로 학대당한 경험은 성인이 된 그녀를 원격조종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무 살 무렵에 그녀를 낳았고 아버지란 존재는 - 늘 그렇듯 - 부재중이다.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그녀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그녀에게는 나름의 체계적인 일상과 자신만의 법칙이 있다.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혹은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진 그녀는 일상을 죄어든 상태로 살아간다. 누구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자체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평범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사람들과의 접촉 경험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그녀는 사교생활의 법칙을 면밀히 관찰하고 시험이라도 치듯 새로 배워야 한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인이지만 대단히 여러 면에서 어린 소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퍼부은 말은 그녀를 옭아매는 족쇄다.

사람이 용기를 낸 후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엘리너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엘리너는 평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반하고 마는데,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서른 살의 그녀는 마치 아이돌을 선망하는 10대 소녀처럼 그와의 로맨스를 꿈꾼다. 막상 현실에서 그와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녀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녀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녀 역시 그의 옆에 있기에 적당한 사람이 아님을. 두 사람의 만남은 결코 운명이 될 수 없음을. 보다 잔인한 것은 그 날,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평생의 사랑을 만났다고 착각했던 것이,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결코 알맞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녀를 바닥에 이르게 했다. 그녀가 외면하고자 했던 진실, 그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진실에 도달하려면 바닥을 쳐야 하는 법이다. 작은 사랑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남아있기를 기도했던 그녀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종종 모든 것을 깨고 나오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상 그렇게 하는 데에 대단한 계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엘리너가 꿈꾸었던 평생의 사랑을 만난 후라든가 허를 찌르는 사건이 필요한 것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엘리너에게 뮤지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찾아온 순간에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마음과 머리 안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다.

적당한 때에 적절한 깨달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옆에 있어주는 단 한 명의 존재. 돌볼 수 있는 책임감 따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감정들을 색다르게 볼 수 있을 정도의 깨달음은 변화에 필수인 것 같다, 주변을 정리하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려는 노력 같은 것들. 책에서는 단지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듯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이 작은 균열을 내고 결국에는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졌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트의 계산대 앞에 서 있다고 치자. 보드카를 세 병 사서 곤죽이 되도록 마시는 평소의 습관을 반복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간단한 선택 앞에서 어제와 달리 보드카 대신 입에 맞는 비스킷을 선택하는 순간. 그리고 그런 일들의 반복. 그런 일을 경험할 때 변화의 싹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용기라는 개념을 일상에 적용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도 아니고, 두려움을 깨고 공포스러운 적에 맞서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일 일이 거의 없는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용기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닐 수 있다. 엘리너가 겪은 일의 트라우마를 우습게 생각하거나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려는 게 아니다. 스스로 평범에도 못 미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엘리너가 그랬듯 기억하고 싶지 않을 일을 기억해내려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끊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끈을 죄책감을 이겨내고 끊어내는 것도 용기이다. 그렇게 하는 데 극적인 드라마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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