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생각하며 눈물 한 방울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by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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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게으른 허무주의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고, 한 가지 해결책이 우리를 구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끼니, 우리가 여행하는 모든 여정, 우리가 쓰는 한 푼에 지난번보다 에너지가 더 사용되는지 덜 사용되는지를 고민하며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p. 235


백퍼센트 공감한다. 게으른 허무주의라. 여태 주변에서, 혹은 내 안에서 숱하게 만나 달래도보고 윽박도 질렀다가 공포도 심어주었던 그분 아니신가. 숱한 날들의 협박과 회유의 결과물이 오늘의 나다. 그 결과 생협의 조합원이 되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플라스틱을 스텐이나 유리, 사기로 바꾸고, 필요한 물건이 생기더라도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들었다 놨다 몇 번은 반복해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 그게 나다. 그뿐인가.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이고 몸에도 좋다고 하니 일반 샴푸나 튜브 형태의 포장에 들어있는 바디, 헤어제품을 다 쓴 후에는 샴푸바와 린스바, 가루치약, 비누로 된 주방세정제 등으로 다 바꾸어버린 사람 아닌가. 쓰레기 분리수거도 이 근방에서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다. 대체로 나는 내가 가진 힘을 환경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기 위해 비교적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 셈이(라고 믿고 있)다.

반가운 점은 미니멀리즘이나 제로 웨이스트라는 이름으로, 다소 있어 보이는 모종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식품 라벨을 꼼꼼하게 챙겨 읽고 구매를 하고 플라스틱보다는 스텐이나 유리 제품을 구입하려고 하며 장을 볼 때도 비닐이나 이중포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눈에 많이 띄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트렌드라고 한다면 몇 년 전부터 그런 움직임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여 내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을까 싶어 제로 웨이스트나 미니멀리즘을 내세운 유튜버들을 넋을 놓고 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걸 또 얼마나 집중해 보았는지, 발을 담그면 보이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부, 딴지를 걸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어떤 유튜버의 동영상은 미니멀리즘을 한답시고 집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모조리 버리고(기부했을 수도 있지만 집에서 쓰던 플라스틱 용기도 기부가 가능할지는 의문) 유리나 스텐을 세트로 구입해 냉장고를 깔끔하게 정리해 보여주었고 댓글을 읽다가 심한 빡침에 직면했다. “미니멀리즘 하신다니 정말 훌륭해요. 저도 이번 기회에 OO님처럼 한 번 해보려고요. 냉장고 정리하실 때 구입하셨다는 스텐 제품 구입처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런 식이다. 미니멀리즘이나 제로 웨이스트가 마치 사업 아이템을 지칭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일까. 물론 그런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선망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하던 방식대로 살아온 모래알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미니멀리즘, 제로 웨이스트, 가치 소비 같은 것들을 방송의 소재로 써먹고 버리는 동안 사람들의 인식에는 뭔가 베이지풍이거나 린넨 소재로 되어 있거나 자연을 닮은 어떤 인테리어나 삶의 방식 같은 것으로 박혀 버린 것이다. 한쪽에서는 배달음식 용기가 쌓여 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플라스틱 프리 제품을 사들이는 기묘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놔.


우리는 곤경에 처해 있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수가 많고 또 스스로 믿는 만큼의 존재가 되도록 운명 지어졌다. 낭비, 빈곤, 재난과 산업, 승리와 패배 등 우리의 역사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다. 우리 앞에 새로운 세기가 펼쳐져 있고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모든 작가가 이야기하듯, 비어 있는 페이지로부터 갑자기 등장할 새로운 가능성만큼 스릴 넘치는 것도 없고 그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p. 236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빈 페이지를 두려워하고 있는 쪽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종종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가 된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단순히 이것이 독감이나 감기처럼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바이러스의 하나이며 나로서는 그저 적응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걸 체감하는 데에 그치지 않기로 한 데에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문제는 앞에서 말한 허무주의다. 너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냐. 걱정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지인들의 허무주의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그런 말에 길들여지고 싶다거나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개인의 방어기제나 회피의식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린이나 에코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환경정책의 실체를 깨달을 때에 비하면 말이다. 내가 탄소발자국에 신경 써서 장을 보고 플라스틱을 집에 들이지 않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대신 남은 음식을 뱃속에 우겨넣는 일상의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세계에서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환경관련 정책은 대다수가 미흡하거나 아니면 아예 퇴보하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은 가는데,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정말이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때로는 (나처럼) 회피하고 싶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나로서는 알고는 있지만, 정말이지 그냥 모른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손가락도 하나 까딱 하기 싫은 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것도 절절 매면서 결국 유혹에 굴복해버렸을 때 과도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하며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죄책감은 차마 쓸어버리지 못하는 나란 인간. 품을 들여 시장이나 동네 마트를 찾는 대신 편하게 집에서 받아보는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그만 굴복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나 하나 정신줄만 놓아버리면 몸이 편해질 텐데. 단순히 환경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건강에도 좋고 특히나 다른 노동자들의 현실을 봐서라도 몸을 편하게 하는 시스템에 길들여지는 것보다는 집밥을 해먹고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이득이지만 말이다. 사람은 때때로 눈앞의 이익에 골몰한 나머지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기 마련이니 뭐.

그러나저러나 개인의 고뇌와 갈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나 같은 평범한 이들의 따귀를 후려갈기는 것이 권력집단의 삽질이다. 정말이지 하도 세게 맞아서 정신이 멍하다. 당분간 따귀의 여파로 멍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은 경배하고 눈에 보이는 자연은 학살해버린다. 우리가 학살하는 자연이 사실은 우리가 경배하는 보이지 않는 신인 것을 모르고,”
p. 271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내게 숨을 쉴 공간을 제공해주는 자연을 믿는다. 나무가 많은 곳에 가면 역하지 않은 좋은 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고,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온다는 것도 안다. 가슴이 답답할 때 바다가 주는 위안에 여러 번 감동했고 그 앞에 서면 경외심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온다. 내게 신이란 그런 존재다.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존재. 우리는 신을 제대로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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