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이 드는 징조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by 오지


영화 ‘기생충’에서 아빠 역할을 맡은 송강호가 말했다. 계획을 세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어차피 계획을 세워봐야 언제나 틀어지게 되어 있다고. 영화 초반에 아들이 부잣집 과외 선생으로 면접에 갈 때는 “너는 다 그렇게 계획이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반면 아들 기우는 아무 계획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로부터 수석을 선물로 받게 된 이후 변화가 생겼다.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랐다기보다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마지막에 수석을 버리고 난 후 그에게는 절실한 계획이 생겨버렸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아버지는 계획에 대해 부정적으로 되어 버렸고(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그걸 종내에는 감추지 않게 되었거나), 아들은 언뜻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계획이라는 관념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맞물려 있고, 또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계획 세우는 데 몰두하는 쪽이다. 물론 그 계획이라는 걸 지키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에 미치는 편이다. 무슨 무슨 리스트를 작성하고, 목록을 정해놓으면 마치 인생이 그대로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심지어 자식이 속 썩일 때 걔가 맘에 안 드는 이유를 적은 리스트도 있다. 그렇다고 딸애나, 내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옆에다 나름의 해결 방안을 적는다. 그것도 깊게 생각한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얕으디 얕은 직관에 의존해서 적는다. 리스트 작성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질리는 법이니까. 리스트 쓰다가 금방 지루해지는 것도 나란 인간의 특성이니까.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또 하나, 도저히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특징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쓴 일기를 보면 느끼는 감정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작성한 리스트나 일기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참을 수가 없다. 아, 내가 이렇게 유치한 인간이었던가. 조악한 문장과 협소한 내 이해심에 불타올라 어떤 때는 일기장을 없애고 싶은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계획도 그렇게 불태워지곤 했다.


크눌프와 나의 차이점은 그렇게 분명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안다. 그것을 받아들였냐 하면, 아니다. 그대로, 나의 결대로 살고 있냐고? 지금껏 그러지 못했는데 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모습이나 말투가 바뀌면 대운이 드는 징조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올해 암 걸린 거 빼고 전체적인 운이 그리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아니 솔직히 단적으로 말한다면 암 걸린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 우라지게 긍정적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 또한 올 하반기 to do 리스트에 적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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