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메이어스의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평소에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쪽이다. 인생을 뒤흔드는 계기가 있지 않고서 인간의 변모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한 순간 캐릭터 변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실소가 터지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소소한 취향의 변화는 가능하다. 사실 안 변하면 큰일 난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또 본인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를 먼저 접한 건 영화를 통해서였다. 순전히 ‘토스카나’라는 이름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 시작 후 5분 정도 혹은 그 이상 대사가 안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기억에 그렇게 남아 있다. 대사가 안 나오는 화면을 넋을 놓고 봤다. 그때는 외국의 풍경이라면 무작정 좋아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책과는 달리 영화는 지저분한 이혼 후 거주지를 옮기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는 설정이다. 영화에서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집을 직접 고치고 꽃을 심는 등 자신의 거주지와 주변 가꾸기를 본인의 노동으로 채운다는 거였다. 그때 당시의 나는 D.I.Y에 푹 빠져있었다(책에서도 나온다. 미국인인 주인공 커플이 D.I.Y 개념의 신봉자라 하자 이탈리아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언제 사용할지 알 수도 없는 공구를 사 모으고 목공 관련 책들을 뒤적거릴 때였다. 여행 떠나기 전 가방 쌀 때가 가장 설레는 것처럼 준비 과정에 미치는 쪽이어서 사 모았던 공구는 그대로 모셔져 있다.
개인의 변화는 이토록 흥미롭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변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저자의 처지가 부럽지도 않고 책 속의 설정을 몽상의 주제로 써먹지도 않게 됐다는 거다. 오히려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고 주변에 강요하는 나이든 사람 특유의 독선이 느껴졌다는 거다(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그때부터 ‘삐딱하게 보기’ 신공이 작동되는 건 나의 오랜 버릇이다. 그건 평생 안 변할 모양이다). ‘책을 쓰려니 자기가 처한 모든 상황이 다 좋고 옳게 보이겠지’ 하면서도 그런 걸 느끼는 순간 관심과 호기심이 급격히 떠나는 것이다.
더 이상 외국 어딘가에서 내 집을 직접 고치며 여생을 보내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 책과 ‘투스카니의 태양’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꿈꾸었던 미래는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져 있다. 영화와 책 사이에 10년 이상의 차이(내가 본 시기)가 나는 것처럼. 그 기간 동안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책도, 영화도 더 이상 레이더에 걸리는 내용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을 잡아끌만한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소득이 있다면 ‘아, 나도 변하는 구나. 내가 이런 부분이 변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사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행위에 자기 얘기가 빠지면 섭섭한 법이다. 실상 그게 전부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버릇. 글을 쓸 때 갑자기 맥락 없이 쳐들어오는 노래 가사 같은 게 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라는 가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이것도 내 오래된 버릇 중 하나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제목을 그리 짓는 수밖에.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할 수 없다. 미리 입력돼 있는 메커니즘 같은 거다. 굳이 설명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