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여인들의 계보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by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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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살짝 감고 있어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걸 알 수가 있다. 더 이상 왁자지껄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길고 커다란 식탁에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엉켜 있다. 하나 같이 시끄럽고 입에 먹을 걸 넣느라 분주하다.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누군가 꺼낸 한 마디가 식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비혼 여성이 갑자기 아이가 갖고 싶다고 했을까. 아니면 임신한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을까. 뭐 하러 그런 게 갖고 싶냐. 바로 타박이 나오지만 상대방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어쩌면 둘 다 아니고 건강문제를 털어놨을 수도 있다. 각자의 생김새와 살아온 인생이 제각각인 것처럼 반응의 온도는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 같이 의견을 얘기하느라 바쁘고 그것이 응당 당연한 절차인 듯 발화자 또한 받아들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결론은 당사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고 주변에서 하는 말은 그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새로 구성원이 될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일 수도 있겠다. 그녀는 얼마 전 가정폭력을 피해 잠시라도 쉴 곳이 필요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물 맑고 풍경 좋은 곳에서 쉬면서 요양이 필요한 암 환자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강조할 것이다. 여성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공동체에 해가 되는 일이 무엇일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곳은 아니지만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사람을 새로 들이는 일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물은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그렇다 해도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은 안전 문제를 미리 예측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 말이다. 뭐 어쩌면 꼭 나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룹이 이끌어 가고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안전 문제라. 워낙에 또 겁이 많은 나는 이 문제를 떠올리자 심각해진다. 주짓수 블랙벨트가 필요하겠어. 어쩌면 다 같이 주짓수 클래스를 들을 수도 있겠지. 구성원 모두가 자기방어 훈련 같은 걸 받거나 공동체 내에서 그런 워크숍을 열어도 좋을 것이다. 함께 모여서 공부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토론도 하고 워크숍도 하고 밭일도 하면서… 아, 그만해야겠다. 헛바람이라도 들은 것처럼 실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상상하게 되는 이 풍경은 말하자면 노후에 대한 꿈 중 하나다. 어쩌면 노후까지 안 가더라도 준비가 되면 당장이라도 실현하고 싶은 미래이자 희망사항이다. 분명히 객사하는 것을 생의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적이 있으니 모순된 이야기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평소 행실로 볼 때 둘 다 해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와 삶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미래이긴 하지만.


90년대에 개봉했던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는 그 시절 희귀한 아이템인 페미니즘 서사를 갖고 있지만 당시 그걸 보던 나는 그런 식으로 맥락을 읽지는 못했다. 다만 그 영화를 떠올리면 지금까지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식탁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섞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는 씬이었다. 안토니아를 중심으로 증손녀까지 앉아 있는 그 식탁에서 안토니아가 어찌나 위대하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증손녀가 마을의 불한당 같은 놈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그녀가 했던 일도 기억난다. 장총을 가지고 그놈을 찾아가 총을 겨눈 채 저주를 내리면서 “이 저주는 끝까지 네 놈을 따라갈 것”이라고 한바탕 퍼붓는다. 그러고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앓아눕는 장면은 너무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안토니아의 저주 이후 그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다른 이에 의해) 죽게 되는 다소 판타지 같은 요소가 용서가 될 정도였다. 그런 일을 겪고도,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인간은 살아가는 존재이고 극적으로 괜찮아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엄연한 가르침은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면서 <안토니아스 라인>을 떠올렸다. 안토니아와 시선은 말하자면 나의 노후대비 롤모델인 셈이다. 심시선이 다분히 가부장적인 체제 내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면 안토니아는 제도나 룰 같은 건 깡그리 무시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예측하건대 두 사람은 생김새도 정반대일 것이고. 시대적인 배경도 달랐지만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만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살면서 겪게 되는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고 언제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한 쪽으로 선택을 내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거나 혹은 부당한 일이 있어도 마음속으로 칼을 갈 줄 알았던 그녀들은 과연 비범한 여인들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그들이 유머를 잃지 않고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는 거다. 나이를 떠나 정점에서 제대로 살아봤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원숙함. 어떤 인생을 살게 되든지 그것만은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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