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테사 모시페그의 <아일린>
머리가 엉망인데도 미용실에 가지 않은지 8개월은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신기하게도 출산 후에 빠진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고 있고 엄청난 속도로 빠지기도 해서, 현재 스코어 파마를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파마 약에 대한 불신. 마지막 한 가지는 젖었을 때 머리카락이 꼬불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 난 머리를 감고 난 후 면발처럼 머리카락이 꼬불거리는 걸 엄청나게 싫어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싫다. 내 머리가 그런 꼴인 걸 보는 게 괴롭다. 예전에 세팅 펌이나 디지털 펌 같은 걸 하면 머리카락이 그렇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 한 마디로 기가 팍 죽었다. 머릿발이 자존심 같은 거여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머리카락에 그다지 자신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깊게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남들한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저 그런 걸 싫어하는, 좀 별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살면서 나의 별난 점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 다른 이들 사이에서 나를 구별하도록 만드는 그런 습관이나 습성들이, 나를 규정하는 독특한 특성들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나를 고민하게 하고, 무리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고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 모양으로 생겨 먹었냐.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기를 그만 둔 어느 날부터 사람들 사이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그게 사회성을 터득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려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감추는 법을 배웠다. 만남이 끝난 후에 그들이 뇌리에서 나를 지워버리기를,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슬퍼했다. 기억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다분히 모순된 태도였다.
「아일린」의 아일린은 나와 닮았다.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던 것이, 이 소설이 단순히 병맛을 풍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인정한다. 병맛 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나). 아일린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묘사하는 비하와 모순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태도, 결코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호기심, 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바탕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시니컬함 등등. 내가 일찍이 겪어왔거나 아직까지도 통과하고 있는 과정들 그대로였다. 그것이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또 너무 닮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읽으면서 느낌이 좋았던 책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다. 아일린을 발견해서 기뻤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니.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만 외로워해도 되겠구나.
물론 어떤 면에서는 아일린이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 아일린은 엑스빌을 떠났고,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뭐, 변명을 하자면 아일린과 나의 처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고, 내 인생에는 리베카 같은 인물이 없으니까. 하지만 척 하는 걸 그만두기로 한다. 이것은 변명일 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아일린도 안다.
대신에 마음에 한 가지 다짐을 품는다. 아이들이 크면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앞당기기로. 현실적인 계산도 더해진 결론이다. 계산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숫자에 약한 나는 가끔 그런다).
그래서 요즘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생기가 돌고 눈이 반짝이는 걸 느낀다. 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 인생에 급작스럽게 생긴 몇 가지 변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과 어깨를 잘 못 쓰고. 앞으로 재건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소한 문제도 있지만, 기쁘다.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