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성장을 눈물 나게 응원하며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오지

딸애의 돌 앨범에 들어갈 문구를 고르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네 편이 되어줄게.”라고 적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잘 내지 못하는 나는, 그보다 더 멋지고 신박한 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근사한 말을 생각해 내고 싶었지만 내 머리 가동 범위 내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당시엔 ‘네 편’이었다.


난, 가족의 관계란 모름지기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왔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누군가는 살아나갈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부모로부터 그런 믿음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내게 딸이 생기면 꼭 그런 믿음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왜 꼭 딸이라고 특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성별을 특정해서 마음속에 쟁여두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딸과 그 뒤를 이어 나온 아들과, 나의 관계 모두 예상 밖이다. 나는 딸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 애 보다 아들 녀석이 나와 더 잘 맞는다고 느낀다. 때로는 아들 녀석에게는 허락되는 일이 딸에게는 그렇지 못함을 느끼면서 유전자를 난도질하고 싶은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이런 습성까지 엄마한테 물려받았다는 것이 지겹도록 느껴졌다.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애증의 이슈가 있고, 나는 아마도 평생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내리사랑이라고. 어느덧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나의 오래된 관계를 돌이켜보기 보다는 딸애와 나의, 조금은 신선하게 팔딱거리는 사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극복의 과정이 될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으면서 주인공에 나를 대입하기보다는 딸애를 대놓고 그려보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세대를 건너가는 구나. 이렇게 한 시대가 가는 구나.


쓸쓸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여전히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고 나를 중심에 두는 사람이기에. 그러나 책 속의 ‘카야’가 겪었을 일들, 세상 속 많은 ‘카야들’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내 딸애에게도 찾아올 것임을 깨닫고 마음이 벅찼다. 그러면서 딸애의 앨범에 적어두었던 말 ‘네 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되새겼다. 자, 나는 어떤 식으로 그 애 옆에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불쑥 끼어드는 못된 자아의 농간으로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상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지켜볼 것이다. 딸애의 반항과 무자비한 무시가 나를 향했을 때 내게 때가 왔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딸애의 첫 경험이 내 것보다는 괜찮은 경험이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랄 것이고 그 애의 첫사랑이 내 첫사랑보다는 거름이 되는 관계이기를 기원할 것이다. 아이가 겪을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스스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종류가 아니기를 바랄 것이다. 딸애가 그 경험을 적어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나는 옆에서 응원할 것이다. ‘카야’가 그랬던 것처럼 딸애가 자신의 결대로 살 수 있도록, 세상의 잣대로 보지 않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편이 되어줄 유일한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며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되는 일인지 알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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