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
동의한다. 온전히 사랑이라고 믿을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경험의 조각만 붙들고도 인생이 얼마나 충만해질 수 있는지. 인정한다. 문제는 그런 존재를 만나는 행운을 거머쥔 이가 세상에 얼마 안 된다는 것이고. 나 또한 그렇다.
20대 시절 연애를 하면서 짝사랑이나 이별로 가슴 아파한 적은 물론 있다. 돌이켜보면 사랑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그 순간을 사랑했던 것이지 사랑을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했던 것이 뭔지 몰라도,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진짜 사랑이라면 그런 싸구려 같은 에피소드나 일시적인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일종의 판타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인지, 아니면 편견인지 알 길이 없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무슨 수로 통찰할 수 있단 말인가. 20-30대 시절, 심지어 지금까지도 연애 상담을 숱하게 해줬지만 주변 지인 누구에게서도 ‘저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하고 있구나’ 느꼈던 일이 없었는데.
적어도 사랑이라면.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벨 훅스가 책에서 “영적인 성장”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
상대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다. 그게 누구든 만나면 느낌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감정’이 끼어들기 보다는 ‘선택’과 ‘의지’를 중요하게 다뤘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우리가 미디어의 상투성에 지나치게 노출된 탓일까. 아무리 내가 의지를 갖고 선택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았어도 아직까지 못 만나봤다면 방법이 틀렸던 것은 아닐지.
그런 면에서 저자가 부럽다. 당당하게 진짜 사랑을 해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경험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란 사람을 입 다물게 만드는 것. 그게 사랑이다. 죽음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무엇이지만 적어도 내게 하나는 분명하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책에서는 받아본 사람이 줄 수도 있다고 말해버려서 사실 실망이 크다. 꼭 부모일 필요는 없지만 가정에서의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예전 같으면 믿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만큼 부모의 역할이 크지 않을 거라는 가설에 꽂혀 있어서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수가 없다. 부모보다 아이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겪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유아 시절에도 부모와의 경험보다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합리화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을, 그래서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을 대신해 밖에서 얻어오길 바라는 마음. 어쩌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아, 모르겠다. 사랑에 관한 한 모르는 것 투성이다. 신의 존재만큼 형이상학적인 것.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존재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 그런 것이다, 내게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