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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Aug 12. 2022

해외 출장 I : 화려함 속의 고단함

  2000년대 초반 국내 대기업에 입사하여 근무하는 동안 해외 출장을 꽤 많이 다녔다. 개발 부서에 근무할 때 국제 전시회 참석을 시작으로 마케팅 부서에 근무할 때는 고객 미팅과 전시회 등으로 매년 한 번 이상은 다녀왔던 것 같다. 어느 날 다녀온 국가를 세어보니 약 20개국. 한때 일본인 고문이 나에게 '아프리카만 다녀오면 전 대륙을 다 찍었다'라고 할 정도로 곳곳을 다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미국 애틀랜타 공항은 너무나 친숙하게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출장으로 다녀온 국가들



  누군가 그런다, '해외 출장은 직장 생활의 꽃'이라고.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해외 출장은 딱 면세점까지가 좋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스무 나라를 다녀왔어도 발도장만 찍었지 기억에 남는 시간은 절반이 되지 않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곳도 꽤 된다. 공항 - 미팅 - 호텔의 반복된 생활이니까. 해외 출장은 지금까지 주어진 환경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은 부담과 짐을 얹어준다. 오늘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출장이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을 소개하겠다.  

        

  해외 출장의 좋은 점은 '세상은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양성'이라는 말을 여러 방면에서 접하고 경험할 수 있다. 인종, 언어, 문화, 기후, 풍경, 음식 등등. 대부분 출장 목적은 판촉이라 고객 사이트를 찾아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독일 사람과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사람들에게서 어떤 친숙한 기운을 느끼기도 했고, 동유럽과 서유럽의 사회 분위기 차이, 북유럽과 서유럽의 건물을 통한 문화적 차이를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 세계사 수업과 책으로 배우지 못했던 사실들을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게 신기하고 설레었다. 정말 이렇게 다를 수 없었다, 각양각색이었다.


  두 번째는 고객을 직접 만나 미팅하면서 직접 인사이트를 발굴해 업무에 연결할 수 있었다. 통상 해외 고객 접점은 법인이기 때문에 법인 담당자에게 현지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한 번 정제된 정보를 전달받으니 현장감이 덜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다.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과 전해 들은 정보에서 출발하는 건, 그 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직접 고객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들은 얘기들은 시장, 고객, 제품 등에 대한 상황을 이해해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었다. 통상 한 번 출장에 5~10개 고객을 만나면 저 바다 건너 시장의 트렌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눈에 그려졌다. 신기하게도 같은 시점에 방문한 다수 고객들의 고민, 관심 분야,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 등은 대동소이하였다. 그것들을 잘 정리해 분석하면 앞으로 6개월, 앞으로 1년 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렴풋한 지시 등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는 면세점이다. 그동안 가격 때문에 사지 못했던 액세서리와 화장품 등을 면세점에서 할인쿠폰을 적용해 구매하면 왠지 한참 득을 본 거 같았다. 물론 면세점에서 파는 물건들이 대부분 고가로 할인해도 꽤 비싸기 때문에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면 다음 달 카드값에 허걱 놀라기 일쑤지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품을 받아 들고 포장을 뜯을 때의 그 두근거림은 출장의 또 하나 즐거움이었다. 아마도 항공 티켓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 제한된 기회란 생각에 과소비를 원 없이 했었다. 아직도 집 곳곳에 그때 사다 쟁여 둔 물건들이 가득하다.



  반면, 해외 출장의 안 좋은 점 세 가지를 꼽으라면 출장 성과에 대한 심적 부담, 출장 2~3주를 다녀오면 한국에서의 생활 패턴이 깨어져 버리는 것과 초기 시차와 언어 적응 문제이다.


  해외 영업부서라면 해외 출장을 자주 가게 되겠지만, 그 외 부서들은 제한된 TO로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없다. 출장 목적이 정해지면 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정되어 가게 되고, 그러면서 또 직원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가야 하기에 소수만 해외출장을 갈 수 없다. 한 번 다녀올 때 발생하는 비용이 항공비와 숙박비 등을 포함해 수천만 원이 들기 때문에 경비 측면에서도 그냥 막  보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 여기저기서 부담을 많이 준다. 직속 임원부터 관련 영업부서, 경비처리를 맡은 총무부서까지 관련 부서들이 보이지 않는, 때로는 보이는 압박을 준다. 제한된 기회 속에서 비행기 티켓을 받아 고객을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고 좋은 인상을 남겨 비즈니스에 긍정적 영향을 만들어야 하고, 경영 성과까지 얻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크다. 그 부담감에 출장 준비 전 소화불량에 걸리기도 한다. 업무 출장은 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불편했던 건 해외 출장 2~3주 다녀오면 한국에서 잘 지내던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는 거다. 아침 수영 강습받고 출근하던 생활이 다녀와 다시 그 패턴을 찾으려면 출장 기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퇴근 후 골프 레슨은 상승 곡선을 그리다 또다시 휴식기를 갖게 되기도 했다. 출장 준비, 출장, 출장 후 일상 회복까지 꽤 오랜 기간 공백을 갖게 된다. 그러다 출장 전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지 못해 새 패턴이 자리 잡은 경우도 종종 있다. 출장 전 2~3주는 회사 출장 시스템 처리와 출장 목적에 맞는 자료 준비 등 출장 준비를 해야 하고, 출장 동안 업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게 미리미리 일도 처리해 두어야 해, 평소보다 2~3시간은 늦게 퇴근하게 된다. 출장 동안은 개인 생활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바쁘고, 복귀 후에는 자리 비운 동안 밀려있는 업무를 처리하랴, 출장에서 발생한 사안들을 처리해야 하기에 또 바빠진다. 해야 할 일은 평소의 1.5배 이상이 많아지는데 반해 출장으로 체력은 이전의 70~80%로 떨어져 앞뒤 각 약 2배 시간에 걸쳐 세 배는 힘들게 일상 현실로 돌아온다.


  세 번째로 출장 초기 시차와 언어에 적응이 힘들다. 대개 출장지가 유럽과 북미 지역이다 보니 한국과 8시간, 많게는 14시간 정도 시차가 있었고, 오전에 출발하면 해 질 녘이 되거나 정오 한 낮이 된다. 현지 시간에 컨디션을 맞추기 위해서 졸리고 피곤해도 비행기에 내린 하루는 꼬박 피곤한 체로 밤까지 버텨야 한다. 도착 첫날 버티지 않으면 이후 시차 적응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새벽 2~3시에는 어김없이 잠이 깨고, 다시 잠이 들지 않더라도 내일을 위해, 시차 적응을 위해 억지로 호텔 침대에 누워 반수면 상태로 아침이 오길 기다리며 그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며칠 잠을 설쳐 2~4일 정도 지나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초기 수면 시간이 힘들어 수면제를 갖고 다니는 분들도 보았다.

  다음으로 적응해야 할 게 언어이다. 한국어와 영어는 체계가 다르고 한국에서 듣던 또박또박한 발음과 현지인들의 발음이 다를 뿐 아니라, 직통 직해를 해야만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초반에는 이 역시 어렵다. 언어 적응을 위해 출발 전 영어 듣기도 해 보고 영어 책을 읽어 감을 미리미리 익혀보기도 하지만,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뇌의 언어 인식 패턴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시회처럼 한국인들과 함께하는 출장이라면 부담이 덜하지만 고객 미팅으로 간 출장에서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말 한마디 놓치면 안 되기에. 출장 초 며칠은 고객 말을 들을 때 집중에 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들의 미간과 입을 보며 바짝 긴장해 듣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시차와 마찬가지로 2~4일이 지나면 언어 또한 나아진다. 영어 리듬에 익숙해지고 별다른 해석 없이 들으면 이제 내용이 파악되어 비교적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적도, 3개월 이상 살아본 적도 없는...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익힌 콩글리쉬 한국인이기 때문에 초기 언어 적응 시간이 늘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양지와 음지가 있듯, 해외 출장 또한 좋았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게 있었다. 여권을 들고 캐리어 끌고 가는 화려한 모습에 마냥 좋아라 할 건 아니었다. 가끔 공항버스를 탑승한 때는 여행 가던 그때의 기분에 젖어 흥얼거렸던 때도 있었지만. 분명 그 안에 고단함과 어려움이 늘 함께 있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래도 더 많은 해외 출장 기회를 가지겠다. 출장 준비를 하고, 정신없이 여기저기 다니고, 돌아와 정리하는 시간이 빠듯하고 힘들긴 하지만, 회사에서 주는 압박감이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그 보다 더 유익한 경험을 했고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혔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였다. 이건 여행으로 접하는 세계와는 또 다른 시간이고 기억이었다.


  '해외 출장 II'에서는 그동안 이렇게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 함께 공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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