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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Aug 14. 2022

매출 vs. 손익 : 닭과 달걀의 문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둘 모두 중요해 하나를 고르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둘 중 무엇이 더 선제적인 것인지 애매한 때가 있다. 

  둘이 연관되어 있어 하나를 고르라는 이분법적 질문은 선뜻 답하기 쉽지 않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닭과 달걀 중 어느 게 먼저이냐


  제품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에게는 아래 질문은 이와 유사하다.


 매출이 먼저냐, 손익이 먼저냐


 10여 년 넘게 제품 가격을 책정하고 판가를 운영했는데, 늘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가격은 가격이라서 중요하다. 가격은 아래와 같이 매출과 손익(혹은 이익, 이하 손익으로 통일함)에 연계된다.      

매출 = 가격 * 판매 수량

손익(이익) = 가격 - 원가


  판매와 직접 연관 있는 영업부서는 대부분 가격을 낮춰 많이 팔고 싶어 하는 반면, 손익을 관리하는 관리부서는 판매 가격을 최대한 높여 제품당 손익률을 최대로 팔기를 원한다. 

  영업부서와 관리부서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 때문에 선뜻 어느 한 편을 들 수는 없다. 


  정상적인 경영 환경에서 가격을 원가보다 낮게 파는 건 장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1,000원에 만든 제품을 10,000원에 파는 건,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가격은 수요와 연동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무작정 높일 수도 없다. 

  대부분의 시장은 가격에 민감해 가격이 높으면 다량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과 손익, 이 둘의 적정점을 찾는 것이 결국 내부 원가와 외부 시장가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매출과 손익이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 성과 지표)로 잡혀있는 부서에서는 이 둘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냐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 둘을 적절히 조율하여 내부 움직임의 방향을 잡는 게 맞다고 본다.


  L사업부의 E 제품은 시장 후발주자로 진입해 초기에 사업을 안정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과 손익 측면에서 취약한 상황이었다. 매출은 한두 거래선에서 나왔고, 각각 고객들의 매출은 그들의 시장 상황에 따라 널뛰기했고, 제품의 손익 역시 고객에게 휘둘려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제품을 맡은 후 치열한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어떻게 경영 상황을 좋게 만들지... 

  우선 선택한 것은 '매출을 늘려 안정적으로 만들자'였다. 

  매출과 손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최선이겠지만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것보다는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게 나을 거란 생각에. 


  매출을 늘리자. 제조업의 근간은 대량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물론 X-비효율성 이론에 따르면 규모의 경제도 어느 시점을 지나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해지면 오히려 비용이 증가해 단위 판매당 생산비가 상승한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E 제품은 생산이 일정치 않아, 생산량이 꾸준하지 않아 매출도 손익도 모두 좋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매출과 손익 중 매출을 우선으로 선정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우선 널뛰기하는 매출을 매월 일정한 수량의 제품을 공급하고 판매해 안정적인 Run-rate*을 확보하는 걸로 목표를 잡았다. 

  단계적으로 매월 1백 만불(약 12억 원 $1=₩1,200 가정), 2백 만불, 다음에는 3백 만불, 그다음은 5백 만불... 

  이런 식으로 매월 안정적인 매출을 발생시키고 동시에 꾸준히 상승 곡선을 만들어야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Run-rate: the projected financial performance of a company, with the basis of the forecast being recent performance, 현재 기업의 경영 성과를 기반으로 한 기업의 예상 재정적 성과 

(sourced by https://www.wallstreetprep.com/knowledge/run-rate-revenue/)




  

그러기 위해 고객과 제품을 재정비했다. 


  한두 개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했고, 동시에 기존 고객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늘려야 했다. 기존 고객의 매출은 늘리고,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제품을 재정비했고, 가격 책정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고객 가격은 최대한 낮게, 손익이 허락하는 선에서 낮은 가격으로 내부 승인받아 운영했다. 물량을 담보로 가격 협상이 들어오는 경우는 무조건, OK였다. 


  Run-rate을 확보하고 이를 꾸준히 증가시키기 위해 당장의 손해는 감수했다. 

  이렇게 3~4년 매출 늘리는 것을 목표로 달리다 보니 매출이 두세 배 커졌고, 연평균 20~30%씩 성장해 매월 안정적으로 매출이 나왔다.

 

  이전은 작은 바람에도 쉽사리 휘청이는 촛불같이 위태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작은 바람 정도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매출이 안정권이란 판단이 든 다음, 손익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가격 산정 시 손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손익 기준으로 내부 의사결정을 위한 안을 제시했다. 


  타이밍이 좋게 사업부 전체에서 원가 인하 프로젝트 지시가 내려와 개발 부서와 원가 절감 아이템을 찾아 진행했다. 

  물량이 안정적으로 받쳐주니 구매 부서는 물량 기준으로 공급사에 가격 인하를 협상했고, 제조 부서 역시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게 되었다. 


  판가를 높게 책정해 제품당 손익률을 높게 운영도 해보았지만, 결국 가격과 판매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 이렇게 책정된 가격의 제품은 판매 수량이 시원찮아 무조건 손익만 쫓는 건 지양해야 했다.


  10,000원에 제품을 팔아 2,000원 남겨 10,000개를 팔면 이익이 2천만 원인데, 이를 9,500원에 팔아 1,500원 남겨 13,333개 이상을 팔면 동일한 이익이고 이를 넘겨 팔 수 있다면 더 이득이다. 


  가격과 수요는 연동되어 움직이며, 이 수요 양과 원가 역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제품 단위당 이익률도 보아야 하지만, 전체 제품군 기준으로 이익과 이익률도 고려해야 했다. 


  물량이 커지니 관련 부서에서도 알아서 먼저 원가 인하를 진행할 방안들을 찾아 추진했다. 이렇게 일이 년이 지나니 제품의 손익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원가와 관련된 모든 부서에서 노력해 조금씩 내려가니 그 효과가 눈덩이 굴릴 때처럼 커져 손익이 개선되었다. 



  쿠팡과 마켓 컬리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하고 있으며 이익보다는 고객 기반을 넓히는데 집중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둘 모두 매출은 조 단위이지만, 작년까지 두 회사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쿠팡은 2010년 설립 이후 적자이다가 올해 드디어 흑자로 돌아섰다는 기사를 보았다. (2021년 쿠팡 매출 24조 원/영업이익 약 2조 원 적자, 마켓 컬리 매출 1조 6천억 원/영업이익 2177억 원 적자). 


  쿠팡과 마켓 컬리 역시 매출을 늘리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선택은 '매출'이라 본다.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너무나 명쾌하게 답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중에는 무엇이 답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기업 경영의 많은 의사결정들이 그러하고. 


  만약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매출 먼저 아니면 손익 먼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매출 먼저라 답하고 매출을 먼저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을 두어 일을 진행할 것이다. 


  그런 다음 매출이 안정적으로 나오면, 매월 괜찮은 규모에 안정적이 되면, 그때는 손익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손익 개선을 위해서는 개발, 제조, 구매, 관리 부서의 도움도 필요하다. 




  일을 하다 보면 몇 가지 옵션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몇 가지 옵션을 노트에 적어보고, 그것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세부 항목들을 적고, 그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선택한다. 


  사업 구조를 선순환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그 처음일지 옵션을 생각해 내고, 각각의 옵션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리해 본다. 


  그런 다음 내가 처음 물펌프의 손잡이를 누르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해 시작했다. 처음 물펌프를 누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제는 누르는 게 이전의 절반 힘이면 충분하다. 


  그럼 왜 내가 그 시작을 해야 하나? 의문도 가졌지만, 먼저 알아낸 사람이 시작하는 게 맞다 생각했다. 힘든 시간도, 그것의 성과도 모두 내 몫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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