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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Aug 25. 2022

SCM 변화 : '쿵' 직감이 왔다

  일을 하다 보면 절망적인 순간이 여럿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해결 가능한 일도 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다. 기억에 남는 막막했던 상황은 해외 고객, 그러니까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SCM (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이 바뀌던 때였다. 아래 그림은 제조 산업을 간략히 도식화한 Supply Chain(공급망)으로 제품의 흐름을 알 수 있다. 

  

Supply Chain or Value Chain


  당시 우리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반제품을 만들어 미국 완제품 회사에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변화가 오고 있었다. 중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를 받아 공장 설립을 확대하였고, 누적된 생산 경험으로 제조 역량을 높아져, 완제품 ODM*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ODM이 가능하다는 것은 OEM**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국 업체들이 제품 설계 능력과 제조 역량을 갖추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에서 직접 반제품을 만들 때보다 낮은 인건비와 생산비로 제품을 만들어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왔고, 중국에 비해 그래도 더 좋은 성능과 품질로 경쟁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보다 더 낮은 인건비와 생산비를 가진 중국 업체의 성장과 발전은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er) : 생산자가 제품을 설계하여 공급하는 형태 

    **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 주문자가 설계한 제품을 그대로 생산해 상표를 부착하는 방식



  미국 곳곳의 고객들을 만나 사업 현황을 들었는데, 모두 중국 완제품과 가격 경쟁을 하고 있었고, 저가 제품 위주로 완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규모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했다. 그 순간 머리가 '쿵'하였다. 반제품을 설계해 미국 완제품 고객사에 납품하던 비즈니스 자체가 위기에 몰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중국 회사와 반제품 공급을 두고 경쟁할 때는, 그래도 고객 대응 수준이나 제품 품질이 더 나아 조금 높은 가격이나마 싸울 수 있었는데, 완제품 자체 생산이 중국으로 간다면 반제품 비즈니스 자체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아래 그림의 보라색 화살표처럼 중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 완제품 업체에 공급할 때, 중국 완제품 ODM/OEM 업체에 우리가 반제품을 공급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조금 우월한 제품 기술력과 제조력을 가진 상황에서 어떻게 만들어도 중국 업체가 만드는 것보다 싸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인해 위협받은 SCM


  SCM 변화는 사업의 중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큰 회사 한둘이 인위적으로 그 변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시장에서의 자유경쟁 결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길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듯 그렇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국의 값싼 인건비와 대량 원자재 구매에 따른 낮은 구매 원가와 중국 정부 지원 등으로 중국 완제품 가격은, 미국 기업이 중국 반제품을 수입해 제조해 파는 것과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 제품의 질을 따지면 미국 기업이 중국의 것보다 뛰어나지만, 제품과 품질의 격차가 가격의 차이를 넘지 못했다. 시장은 가격에 민감할 뿐 아니라, 가격이 절대적인 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가 제품부터 중국 완제품이 수입되어 미국에 판매되기 시작하더니, 점차 중저가, 중가 제품으로 그 비중도 커져갔고, 몇 년 후에는 프리미엄 제품 외는 중국 완제품 수입에 의존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십 년 정도 시장 변화를 관찰했는데, 이 시장은 차별화 디자인과 고품질을 원하는 프리미엄 시장(가격이 중요하지 않은 시장, 대신 규모가 작음)은 미국에서 만든 제품이 공급되었고, 대량 판매의 Volume-zone 제품은 중국산이 많이 팔렸다. 또한 부피가 작은 제품들은 물류비가 적게 드니 중국에서 만들어 가고, 부피가 큰 제품들이 미국에서 제조하여 유통되었다. 이렇게 시장에서의 원가, 비용, 경쟁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시장 구조와 공급 형태가 자연스레 바뀌어 갔다.




  머리가 '쿵'했던 때 제품 담당자로서 선택한 것은, 취한 방안은 불확실성이 높고 중국을 이길 가능성이 낮은 시장은 포기하고, 그때 SCM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의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반제품을 미국 완제품 고객에게 공급하는 비즈니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 부피가 큰 제품을 주요 타깃으로 했다. 정면 승부보다는 우회로를 택해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에 역량을 모았다. 

  부피가 큰 제품을 목표 시장으로 해 신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 판촉 하였고, 그렇게 판매를 늘리며 비즈니스를 운영해 규모를 키워나갔다. 결과적으로 몇 배로 키웠고, 이후 꽤 오랫동안 제품을 공급하였으니 성공적인 우회로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로 성공한 것일까, 정면 돌파를 택해 그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해서 사업을 키워야 진짜 성공한 게 아닐까..."

 

 

  다시 자주 나에게 묻는다. 

  "그때 정면 승부할 수 있었던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아직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선택하지 않은 과거 상황의 결과 예측이 잘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 한국 대부분의 제조 산업에서 동일하게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90년~2000년 대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제품을 제조했는데, 이제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한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그 사이 중국의 제조업은 많이 성장했으니까 위협이 된다.


  인생 갈림길에서 선택이 인생을 엮어 운명이 되듯, 사업을 하는 직장에서의 일도 그러한 것 같다. 나와 우리의 선택이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이 곧 언젠가의 미래가 되어 오늘의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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