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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Aug 17. 2022

B2B 샘플 II : 달나라로 보내고픈 업무

  '샘플'하면 지긋지긋하다. 입사 초 R&D 연구원으로 시작할 때부터 Product Manager로 퇴사할 때까지, 샘플 업무는 늘 곁에 있었고, 어떤 종류의 것이던 늘 이슈가 있었다. 

  이전 글 'B2B 샘플 I : 심플하지 않다'에 설명한 것처럼 B2B에서는 샘플 제공 없이는 매출로 연계되지 않는다. 너무나 중요하지만 또 너무나 힘들게 한 일임에 틀림없다. 


  지난 20년 동안 경험한 샘플 관련 이슈와 문제들로 얘기하자면 며칠은 꼬박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반복적으로 마주쳤던 문제들과 샘플 업무를 어떻게 안정화시켜갔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샘플 업무의 주요 이슈 사항


  일반적으로 대부분 회사 일들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많은 사람들이 프로세스 기반으로 업무를 한다. 제품 개발, 양산, 제품의 판매 및 물류 이동, 양산 제품의 재고 관리 등 많은 일들이 시스템 기반으로 수행되고 있다. 

  하지만 샘플 관련 프로세스와 시스템 구축 정도는 미비했고, 구축했더라도 실제 업무를 반영하지 못해 활용도가 낮아 자연스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 샘플 업무는 시스템화 정도가 낮아 직접 담당자들이 하나하나 챙겨가며 일을 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담당자에 따른 업무 편차가 존재했고, 샘플 업무가 일 자체보다 관계의 이슈가 더 크게 작용할 때도 자주 있었다. 

  열정적인 담당자는 잘 챙기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는 자기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만 하여 진척이 더디기도 했고, 꼼꼼한 담당자는 정성을 다해 문제없이 대응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는 샘플 수량이 틀린다던지 일정을 못 지키거나 다른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샘플 업무를 누가 대응하느냐에 업무 진행과 그 결과에 편차가 크게 있었다.

  또한 비슷한 시점에 샘플 요청이 제작 부서인 개발에 들어가도 더 친한 이와 덜 친한 이가 신청한,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신청한 이와 덜 친절하게 신청한 이에 대한 대응 정도는 확연한 차이를 냈다.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일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 처리하는 것이니 발생하게 된다. 종종 아니 자주 일 자체보다 관계의 문제를 푸는 게 더 시급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렇게 담당자에 따른 업무 편차도 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살펴야 했기에, 몇 배는 더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 되었다.



  2. 샘플은 늘 새로운 이슈들이 생겨 끊임없이 문제 해결 과정이 함께 수반되어야 했다. 회사 일은 유사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그 안에서 일 처리 노하우도 생기고, 상황에 익숙해져 심리적 안정을 갖고, 지식이 쌓여 실력이 향상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샘플은 대부분 새로이 기획하는 제품이거나 신제품 개발 중 고객 대응하는 것이다 보니, 늘 무언가 새로운 요소가 있고, 그것이 익숙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항상 이슈없이 끝나지 않았다. 

  제작 중 필요 부품이 부족, 돌발 상황으로 샘플 라인을 확보하지 못한 때, 새로 적용하려던 공정이 오류가 난 경우, 기껏 제작해 고객사에 보낸 샘플의 성능이 부족했던 때, 배송 중 파손된 경우, 샘플 라벨이 부착되지 않았 잘못 부착된 경우, 샘플 정보가 제때 고객사에 제공되지 못한 경우, 약속된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경우, 고객이 요청한 것과 다른 샘플이 나간 경우, 샘플 요청을 했음에도 제공이 안된 경우, 제대로 된 샘플을 제공했지만 평가 결과 경쟁사보다 뒤지는 경우 등등 지난 몇 년 간 고객으로부터 받은 샘플 관련 불만 역시 그 종류와 수가 어마어마하다. 

  샘플 업무는 지금 당장의 경영 성과가 급한 대부분의 경영진에게 후순위이고 확정된 절차가 없어 이를 잘 챙기지 않는데, 수면 아래 실무들끼리 지지고 볶고 샘플 업무를 하다가, 매번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그 이슈를 해결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샘플이 하나 완성되어 나왔다. 회사에서 주어진 무게보다 실무에게는 힘겨운 업무였다.

  늘 샘플 업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땐 중요한 샘플 제작이 일그러졌을 때나 고객사에서 샘플에 대한 불만을 표할 때였다. 샘플 업무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먹는 업무이기도 하다. 



  3. 마지막으로 샘플 업무의 Ownership은 누구에게 있는가란 내부적 갈등이 늘 있었다. 샘플 업무의 전체가 10단계라고 보면 전 단계를 꿰뚫어 매니징 할 수 있는 이가 있거나, 전체를 컨트롤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가 있어야, 다양한 부서가 얽혀있는 일이 효율적으로 책임감 있게 진행될 텐데, 그렇지 않았다. 고객의 요청을 받는 영업부문이 앞 2단계와 고객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10단계를 수행한다고 하면, 직접 샘플을 제작하는 개발이나 제조부문은 6~9단계를, 이를 중간에서 조율하는 마케팅부문 등 여러 부문은 3~5단계를 수행하는 것처럼 여러 부문이 엮여있다. 

  샘플 업무가 발생하는 루틴은 대개 아래와 같다. 고객이 직접 요청하거나 고객에게 전달 필요를 느낀 대리점/법인/영업에서 처음 발의를 하면 PM(product manager)/상품기획/마케팅 부서에서 이를 취합하여 개발부서에 요청하면 제작 방법에 따라 개발에서 샘플 외주 업체에 의뢰하여 제작하거나, 특정 장비나 양산 장비를 이용해야 할 경우는 제조부서에서 샘플 제작을 진행한다. 품질 부서는 샘플 종류와 목적에 따라 관여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샘플 제작이 완료되면 영업에 전달되어 고객에게 전달되는데, 늘 누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지 경영진 결정에 따라 혹은 담당자들 간 협의에 따라 왔다갔다 하곤 했다. 

  영업 부서에 가지라 하면 개발과 제조부문까지 업무 영역을 확대하기 어렵고 샘플은 기술적 사항들도 발생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고, 개발 부서에서는 개발은 직접 제작하고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지 샘플의 전체 흐름을 관장하는 건 연구 개발 고유 업무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 한다. 그 중간 부서 상품기획/마케팅에 그 책임이 주어지면, 그들은 이렇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많은 업무들을 떠안게 되어 내부 조율 업무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그들이 꼭 해야 할 신제품 기획이나 전략 수립 등 업무에 소홀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 부서에서 Ownership을 가질지는 아직도 진행 중인 이슈사항이다. 

  회사에서 여러 부서에 걸쳐 진행되는 업무는 모두가 동일하게 책임을 갖는 건 어렵다. 그 말은 곧 아무도 책임감을 갖지 않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Ownership을 가진 부서의 담당자는 샘플 전체 진행사항을 꿰고 있어 진행에 이슈가 생기면 그것을 풀어야 하고, 내부 부서와 외부 고객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기 위한 창구 역할도 겸해야 하는데, 샘플 업무는 어느 한 부서에 쉽사리 떠넘기기 어려운 성격의 것이다.



샘플 업무 안정화


  이렇게 샘플은 미래 매출과 고객 확보에 중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 그것에 대한 기여가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부에 이슈가 되어 담당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6~7년 전에는 늘 새로운 이슈가 실무들을 괴롭혔는데, 반복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방어하기 위한 업무 기준을 수립했고, 좀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어 샘플 대응 업무를 프로세스화 시켰다. 이렇게 3년여에 걸쳐 진행하니 샘플 업무도 안정권에 들어, 담당자들 간의 기준과 방법들이 자리 잡아가며 욕먹는 횟수는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 입사 초 연구원으로 시작해 샘플을 제작하고 테스트했던 시절부터 주니어, 시니어가 되어 직접 샘플을 운영하고 관리했던 경험에 기반해 어떻게 개선해 갔는지 정리해 보겠다. 



  1. 내부 시스템과 동기화하여 기존에 운영하던 프로세스 안으로 샘플 업무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하였다. 샘플 업무를 시스템화하려는 노력은 수차례 하였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짓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앞서 기술한 것처럼 매번 새로운 성격의 제품이 만들어져야 하고, 고객과 관련부서들 간 발생하는 경우가 예측이 안되어 시스템 안에 넣지 못하였다. 

  샘플 업무를 표준으로 만들어 고정된 틀 안에 넣어 사용하기에는 분명 그 한계가 존재했다. 기존 회사 시스템을 운영하는 외주사에 의뢰해 샘플 시스템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는데, 사용이 제한적이거나 현실 업무 진행과 맞지 않아 결국에는 낮은 활용도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다. 

  시스템이 없는 경우 또는 있어도 사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기업 내에 많이 사용하는 시스템의 프로세스와 동기화해 진행하면 내부 부서들 간의 조율도 용이하고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샘플 업무 대응과 일정은 타 시스템을 따르고, 그 외 진행은 매뉴얼로 수행하였다. 

  우리의 경우 샘플 제작을 주요로 담당하던 부서가 개발이라 개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동기화하여 운영하였다. 개발 초기 단계에는 Proto 샘플, 중반기 제품 설계가 완료되면 Engineering 샘플, 신뢰성 및 라인 셋업이 완료되면 Approval 샘플을 준비하였다. Coordinator(PM/마케팅/상품기획) 역할을 맡은 부서 담당자는 각 단계 일정을 확인하여 샘플 준비와 제작 기간을 고려하여 3~4주 전 영업에 샘플 예고와 관련 정보를 미리 공유하였고 개발에는 필요한 샘플 종류와 수를 미리 신청하였다. 

  이렇게 하면 개발부서 역시 과제 진행과 함께 샘플 제작을 하여 시간과 자원을 줄일 수 있었다. Coordinator 역할을 맡은 담당자가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샘플 종류와 일정을 사전 고려해 업무 하는 게 필요하다. 



  2. 샘플의 종류와 목적에 따라 내부적으로 구분해, 각 경우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방법을 찾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샘플은 제작 방식, 용도,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는데, 이를 구분하여 내부 부서들과 공유하여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찾았다. 

  먼저, 개발 샘플과 양산 샘플로 구분해, 개발 샘플은 개발부서에서 대응하고 양산 샘플은 제조 라인에서 공급하기로 하였다. 반면 양산 샘플은 샘플 제작을 위해 라인을 멈추고 다시 가동하는 건 판매 제품의 생산 효율을 떨어뜨려 샘플 요청이 많은 제품은 사무실 내 양산 제품 샘플 재고를 운영하였고 그렇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이 신규로 제작 대응하는 걸로 관련부서들과 협의하였다. 개발에서 제작하는 샘플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개발 프로세스 단계에 샘플 종류를 맞춰, 개발 과제 시작할 때 미리 종류와 수량을 확정해 진행하였다. 

  샘플이 B2B 비즈니스에 있어 중요한 건 두 말할 필요 없지만, 모든 부서가 샘플만 대응할 수도 없다. 다른 중요한 일도 수행해야 한다. 관련 부서들이 크게 움직이는 방향과 리듬에 맞춰, 샘플 업무를 그 사이에 끼어넣어 최소의 리소스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방법을 찾아나갔다.  



  3.  고객이 샘플을 테스트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 사전 준비해 대응하였다. 초창기 샘플 공급에 많이 한 실수가 샘플 자체만 보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 외 필요한 정보들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고객사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샘플 운영 측면에서도 서툴렀다. 어떤 샘플이 무엇인지 명확히 구분해서 보내지 않기도 했고, 샘플 관련 정보와 데이터가 누락된 경우도 많았다. 이 글을 읽으면 '너무 당연한 걸 놓친 거 아냐', 라 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부서에 걸쳐 업무가 진행되고, 실물을 빨리 제작하고 보내는 거에 급급해, 그 외 필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뒤늦게 고객사에서 요청 오거나 경쟁사에서 이렇게 이렇게 한다더라는 피드백을 받고 부랴부랴 뒷북을 치곤 했다. 샘플을 제작해 고객사 사이트로 발송하면 업무가 종료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다시 관련 업무들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와 끝이 어딘지 불명확했다. 그러니 업무들이 켜켜이 쌓였고 고객 대응 일정과 방식도 일정치 않아 내부, 외부 모두 불만이 높아졌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샘플에 대해 미리 고객사에 보낼 정보와 함께 나갈 데이터를 제작하며 준비하였고, 발송 후 받을 피드백까지 관리하는 등 체계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샘플용 라벨 양식을 만들어 부착해 보냈고, 샘플 라벨 번호에 따른 테스트 결과를 확보했고, 샘플 테스트 리포트 양식을 만들어 발행했고, 샘플용 포장 박스를 별도로 제작해 이용하였다. 

  샘플 종류별, 즉 Proto-샘플, Engineering 샘플, Approval 샘플인지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지 정의해, 제작 과정에 함께 준비하여 고객사에 제때 제공했다. 샘플 그 자체 제공만으로는 실제 비즈니스로 절대 연결될 수가 없다는 걸 몇 번의 실패와 고객사 불만을 통해 배웠다. 샘플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관련 정보와 데이터 제공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4. 공통된 내부 샘플 이력 관리를 했다. 사업 초기 담당자 성향에 따라 샘플 이력을 관리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서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부 보고 및 프로젝트 성과 관리를 위해서 이는 꼭 관리되어야 해 공통된 양식을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부서들 간, 제품들 간 차이가 있어 이를 통합된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 관련자 모두 이를 사용하게 하는 건 초기 장벽이 높았다. 어디에나 새로운 것을 반기지 않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니. 

  하지만 필요성을 설득하고, 여러 번 요청 사항을 양식에 반영해 가며 발전시켜 나갔다. 샘플 이력 관리에는 제공되는 샘플에 대한 정보, 예를 들면 날짜, 종류, 수량, 대표 사양, 특이 사항 등이 기입되어야 하고, 그것의 결과 즉 고객의 테스트 결과나 피드백, 실제 비즈니스 연계 여부 등을 기입하는 것까지 포함해 여러 부서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통된 양식을 만들어 이력을 관리했고, 정기적으로 이를 분석해 업무 개선 사항을 찾아 발전해 나갔다.   




  샘플은 당장의 매출과 연관이 낮아 업무의 중요성 또한 저평가되기도 하는데, 좀 더 긴 숨으로 바라보면 미래 매출에 샘플 업무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샘플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것이, 미래 매출의 첫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샘플 관련 일은 높은 빈도와 부하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도에 비해 내부에서 인정해 주는 정도는 미비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로 담당자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최대한 샘플 업무에서 달아나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샘플 업무는 달나라에나 주고 싶은, 외면해 버리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맡아 십여 년간 운영한 마케팅팀 내 담당자로서 샘플은 정말 중요하다 생각한다. 샘플의 격이 곧 기업의 실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샘플이 없으면 매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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