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 '강남(江南)'을 주거지 후보로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강남이 교통, 교육, 의료, 상권 등 인프라가 잘 돼 있는 지역인 것도, 소위 말하는 상급지(上級地)인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언젠가 살면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당장 꼭 살고 싶어' 라며 현실적인 목표를 두는 것은 엄연히 다른 얘기다.
강남 거주를 목표로 두지 않던 이유를 한 마디로 하면 돈이 없어서, 조금 더 있는 척해보면 가성비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가지고 있는 돈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같은 가격에 강남 외 다른 지역에 집을 구하면 집 평수가 넓어지거나, 깨끗한 신축 아파트에 살 수 있거나, 지하철 역이 코앞에 있는 역세권에 살 수 있었다. 이 말을 반대로 하자면, 강남에 살기 위해선 좁고 낡은 집에 간간이 오는 버스를 타고 외출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아내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녀는 30년간 강남에서만 자란, 소위 말하는 강남 토박이였다. 결혼준비를 하며 그녀가 내세운 조건은 '스드메'도, 결혼식장도, 신혼여행지도 아니었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 살 것'. 그것이 유일한 요구사항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러기로 했다. 좀 좁고 낡으면 어떠리,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데. 그리고 대출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예산 내에서 집을 구하겠다는데.
동물이 가진 귀소본능(歸巢本能) 내지는 회귀본능(回歸本能)이란 이런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특히 여자들이 자신이 자란 동네에 대한 애정이 더 한 듯했다. 친정이 주는 안도감을 남자인 내가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이를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비록 우리 집안의 반대로 신혼집은 강남에 구하지 못했지만, 결국 우린 몇 년 후 비록 전셋집이나마 강남에 마련함으로써 '강남입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또 의문이 생겼다.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강남인'들은 하나같이 결혼 후에도 자신들이 살던 동네로 돌아오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도 돌아오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희망했다. 나는 그들을 '연어 같다'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저 동네엔 뭐가 있길래 이 난리일까.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이제는 강남 출신이 아닌 친구들 사이에서도 강남입성이 관심사로 떠오르기시작했다. 본인이 원해서, 배우자가 원해서, 아이 때문에... 이미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이것저것 답변을 해줘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인간의 회귀본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을 납득하기 위해 나에겐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