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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May 07. 2024

강남에 살려는 이유(2)

야, 너도? 야, 나도!



 오랜만에 대학교 동창 셋이 모였다.


 "나 어제 임장(臨場) 다녀왔다."


 "응? 너 이사하게? 지금 집 산 지  얼마 안 됐잖아?"


 "아, 애 때문에. 여긴 학군도 별로고 학원도 없고. 아무래도 분위기도 좀 차이 나고."


 "비쌀 텐데... 야,  지금 그쪽 살잖아. 거기 얼마나 하냐?"


 응? 둘의 대화를 듣던 중 갑자기 를 부르는 말에 깜짝 놀라 마시던 물을 꿀꺽 삼켰다. "남의 아파트 가격을 내가 어찌 알아. 직접 다녀온 사람한테 물어보지?" 소 같으면 이렇게 핀잔을 줄 법도 하건만, 머릿속이 복잡한 탓인지  "몰라"라는 한 마디로 대화를 마쳤다.


 의외였다. 지금 강남으로 집을 옮기려는 친구는 나와 같은 동네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녀석이다. 거리 따지면 강남과는 서울의 정반대 다름없는 동네에 살던 녀석은 결혼하며 소위 '영끌'로 아파트를 구매했다. 당시 신혼부부들에게 한창 인기 있던 마포구의 대단지였다. 언젠가 강남으로 이사할 생각 없냐는 질문에 '그 비싼 델 어떻게 가냐'며 손사래를 치던 모습과, '어차피 공부 머리는 타고나는 거라 사는 동네는 상관없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중학교 동창 한 명은 신혼 때 성동구 자리 잡더니,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송파구로 이사 왔다. 이유를 물으니 뭐 당연한 걸 묻냐는 투로 말했다.

 "신축에, 대단지잖아. 강남이랑 가깝고."


 또, 판교에 자리 잡은 후배는 이사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도시라 깔끔하고, 강남 생활권이잖아요."


 앞서 언급했던 '연어'들과 달리 본가도, 출신학교도, 직장도, 심지어 처가도 강남과는 아무 연관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강남 외 지역으로 가려는 이들도 이주의 이유에 '강남'이란 단어가 들어간다도대체 강남엔 무슨 꿀단지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이 꼽는 이주 사유 중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교육과 동네 분위기이다. 교육이야 대치동 학원가를 위시한 수준 높은 사교육 기관은 물론,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들이 강남권에 몰려있다는 걸 누구 알고 있으니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동네 '분위기'가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 추상적인 개념이 등장하면 어느 자리가 됐건 다들 말을 아낀다. 혹시나 상대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지 경계하는 모양새다.


 "괜찮아, 우리 사이에 뭘"이란 마법의 문장으로 독려하고 나서야 비로 쭈뼛쭈뼛 본심을 털어놓는다. '다 같이 공부하는 면학 분위기 조성되어 있다'는 조심스러운 말로 시작된 대화는 이윽고 '확실히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 '민도(度)가 높다'등 의 표현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뭐, 그래서인지 몰라도 강남 집값은 절대 안 떨어지잖아. 괜히 강남불패(不敗)겠어? 돈만 있으면 투자관점에서도 여기만 한 데가 없지."


 다들 끄덕이며 이견 없이 끝난 대화를 종합해 봤다. 주거지로서 강남의 장점 교육 인프라가 우수하고, 사람들의 수준(?)이 높고, 집값의 상승폭은 큰 반면 하락 위험은 적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내가 직접 검증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 흐른 뒤였다. 제는 내 삶의 터전이 된 이곳에 아이를 고 키우며, 마침내 아내의 등쌀(?) 반, 나의 의지 반으로 세입자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매수했을 때. 이제는 강남이란 곳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그간 들어온 무성한 소문 중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인지, 혹은 과장이고 축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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