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집에 초대했다. 몇 년 전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넣은 청약이 당첨됐는데, 마침내 그 집이 완성되어 집구경을 시켜준다 했다. 오래전부터 '강남 재건축 최대어'라는 수식이 붙은 곳으로, 공교롭게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아이가 신축 아파트의 정갈한 놀이터에 감탄하며 노는 사이 아내와 나는 친구와 어른들만의(?) 얘기를 나누었다. 부동산 시장, 아이들 교육 같은 화제가 오가다 우리의 학창 시절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친구가 이 동네 출신인걸 알게 된 아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와, 그럼 아내분이랑 고등학교 동창이신 거예요? 중학교랑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그가 강남 8학군 출신인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우연히 학교 동창이었고, 결혼까지 '골인' 했다는 사실도. 나에겐 신기한 인연이나 낭만적인 스토리 정도로 여겨졌을 뿐인 이야기지만, 아내는 궁금한 게 많았다. 이어지는 질문 속에 나는 나의 20년 지기 친구가 초등학교 때부터 쭉 강남에서 자라온, 소위 '강남 키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알고 보니 녀석은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다(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똑똑해 보이더라).
수많은 학교의 이름들이 대화 중 오갔다. '휘문', '경기', '숙명' 등 고등학교는 나에게도 익숙한 곳들이었다.
비단 언론뿐을 통해서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대학 입시 이야기가 나오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름이기에 낯설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8학군 출신이 비일비재했고.
하지만 중학교, 초등학교로 이야기가 이어지자 내 머릿속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대박! 대청이요?...전 대치. 별생각 없이 다녔는데 요새 학부모들 사이에선 비선호 학교래요."
아내의 출신 학교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면, 그들의 대화 내용이 중학교 얘긴지 초등학교 얘긴지도 몰랐을 것이다. 위치조차도 헷갈려서 하나하나 지도를 더듬는 나와 달리 그들은 학교 이름을 듣는 즉시 그 학교의 배정지역이 어디까지인지, 당시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이 동네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인정받는지가 그려지는 듯했다. 그렇게 잠깐 몇 분 사이에, 그녀는 20년 동안 내가 알아낸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친구에게 뽑아(?) 냈다. 친구 녀석도 대화가 자못 즐거워 보였다.
알 수 없는 소외감이 들었지만 내가 모르는 화제 앞에선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인 법. 언젠가 '강남인'의 조건에 대해 들은 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