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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Sep 03. 2024

5살도 늦어요? 영어유치원 논쟁(1)

'한글도 모르는 애한테'라는 변명

 



 다니던 어린이집 5세(만 3세) 반이 생기지 않았기에, 반쯤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유치원 보냈다. 동네에선 나름 대기까지 있는, 인기 있는 곳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뜩이나 생일이 늦은 편이라 소수인원으로 케어받는 어린이 집도 아닌, 집단 규율생활을 해야 하는 유치원에 갔을 때 적응을 잘할지 걱정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같은 반이라고 해도 1월생과 12월생은 무려 11개월 차이가 난다. 아직 40여 개월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불안감은 '우리가 과연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줬느냐'는 것. 나야 말할 것도 없고, '강남키즈'로 자란 아내조차 당시엔 아직 아이가 어린데 교육을 운운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어린데 교육을 운운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녀는 나보다 접하는 정보도, 교육에 관심도 많았다. 다만 회사생활과 육아로도 지친 우리 생활에 먼 미래를 고민할 여력이 없었을 뿐.


 아이가 4살(만 2살)이 된 겨울, 수료를 불과 두어 달 앞두고서야 어린이집에 5세 반이 생기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제야 우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2학기 초반부터 5세 반 신규 개설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해주시긴 했다. 다만 우리가 둘 다 출퇴근만으로도 바빠 아이의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을 회피했던 것 같다. 짐작은 했지만 정말 개설이 안 될 줄이야. 어린이집의 안내가 아니더라도 대충 알고는 있었다. 이 동네는 어지간하면 아이들을 이른 나이에 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엔 늘 '영유', 즉 영어 유치원이 있었다. 


 영유야 말로 유아 때부터 시작되는 강남 사교육(물론 요새는 비단 강남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지만) 시장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실태에 대해 못 들어본 바도 아니다. 단지 언론이나 주변사람들이 조금은 과장해서 말했다고 여기거나, 아직은 다른 세계 이야기라고 믿고 싶었을 뿐. 특히 내 눈엔 아직도 어린 걸 넘어 아기 티도 못 벗은 아이가 벌써 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도 아니었고, 흥미를 위해 일부러 부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또래 학부모인 친구가, 친적이, 그리고 같은 동네 주민들이 겪고 있는 실제 경험담이었다. 


 그 신화 같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앞서, 우리는 일단 큰 고민 없이 영유를 선택지에서 지웠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시스템이라는 비판을 하기에 앞서 솔직히 보낼 형편이 되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연 평범한 월급쟁이 부부의 경제력으로 영유를 마음 편히 보낼 수 있을까? 우리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 비용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여행, 외식 등과 같은 다른 영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사교육 영역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여유 있는 집들은 영유를 보내고 또 다른 사교육을 시킬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겐 영유도, 그 이후의 커리큘럼도 감당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물론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마뜩잖은 것도 사실이었다. 막상 설명회를 직접 다녀와보니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들었고.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영유를 보내지 못한 이유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다. 



 문제는 고민을 오래 하다 보니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것. 이미 유치원 별로 진행하는 설명회는 태반이 끝나있었다. 더구나 맘카페 등 인터넷에도 온통 영유 관련 정보만 돌고 있을 뿐, 일반유치원은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강남쪽은 너무 영유가 보편화돼서 오히려 보낼만한 일반유치원이 없다고. 그나마 일반유치원 중에도 유명한 곳은 사람들이 몰려 대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유치원 배정은 기본적으로 추첨제를 따르기 때문에, 떨어질 경우 대기자로 등록해야 된다. 단,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닌 학원으로 분류되어 별도로 선발한다).


 여기저기 정보를 모아 평이 괜찮다는 일반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지만, 그 후로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영유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걸 실제로 증명이나 하듯 단지 내엔 일일이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수의 영어 유치원 셔틀버스가 오갔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를 오가는 수많은 '영유' 셔틀버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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