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는 것도 맞지만
주변의 강남출신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목표로 하는 거주 지역이 어디냐고. 거의 대부분 살던 동네를 꼽았다('구역'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멀리 가봤자 바로 옆동네 정도?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사례 1) 대치동 출신 A군. 목표는 대치동 R아파트
(사례 2) 개포동 출신 B양. 목표는 도곡동 D 또는 개포동 K아파트
(사례 3) 압구정 출신 C군. 목표는 압구정 H 아파트
(사례 4) 서초동 출신 D양. 목표는 반포 A 아파트
(사례 5) 잠실동 출신 E군. 목표는 잠실 O 아파트
놀랄 만큼 모두 자기들이 자라온 동네다. 결코 우연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더 상급지로 갈 생각 없냐, 압구정이 끝판왕(?) 아니냐 '는 질문에 '그럴 돈 있으면 자기가 처음에 말한 아파트 사고 일찍 파이어족이 되겠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지난 수년간 너무나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압구정은커녕 자기가 살던 고향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현실에 분노하고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목표는 자기가 자란 지역이었다(불행히도 강남을 대표하는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이 없어 그쪽은 조사할 수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샘플로 한 조사라 다른 '강남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놀랐던 건, 그들 모두 정확히 '어느 아파트'라고 구체적인 단지명까지 찍었다는 점. 내가 처음 강남을 목표로 하게 됐을 때와는 사뭇 다른 대답이다. 나의 경우 원하는 동네를 말할 때 막연히 "요새 용산, 마포가 뜬다던대...", 또는 "강남 가면 좋지. 저번에 가보니 00동이 좋아 보이던데?"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내가 목표 대상을 구체화할 수 없는 건 당연히 그 동네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거지역으로서 강남이 가지는 의미가 실생활보다는 막연히 상급지로의 이동, 일종의 신분상승에 그 의미가 맞춰져 있는지도. 최근에 '작성감'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비싼 외제차에서 내릴 때 느끼는 '하차감'처럼, 서류상의 주소지란에 강남 주소를 적으며 느끼는 만족감을 말한다고 한다. 자녀 교육이니, 인프라니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의 경우에도 이주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이 '작성감'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강남이란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실거주의 목적으로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강남 인프라를 누리고 자라다 보니 오히려 남들의 시선이나 과시욕에서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좀 과장해서 말하면 주택을 '주거지'라는 본질 그대로 보는 느낌?
이미 나는 시기를 놓쳤지만, 나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우리는 부자동네 살아'가 아닌, '우리 동네는 참 살기 좋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조금은 뿌듯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