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눅눅한과자 Aug 06. 2024

우리만 맞벌이야?

일 시켜서 미안해

   



 아이가 막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맞벌이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겨우 '엄마', '아빠' 정도만 말할 수 있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마음 편치는 않았다. 우리가 전세로 살던 구축 아파트엔 어린이 집이 없었지만 운 좋게도 근처 신축 아파트의 어린이집 TO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극적으로 아내의 복직 6개월 만에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국공립에 규모도 크고 깨끗한 시설을 가진 그곳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감사의 마음은 잠시, 그 잠깐 사이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오가는 등원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보기도, 자전거를 태워보기도 했지만 비 오는 날, 더운 날, 아이가 늦잠 잔 날 등 평온한 날이 거의 없다 보니 그 짧은 거리도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매일 헐레벌떡 서둘러도 지각을 면치 못하는 우리와 달리 여유 있는 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서 몇 발자국 나오면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부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강남 한복판 신축 아파트에 살면서 도보 5분 거리에 아이를 맡기는 삶이라니! 심지어 지상으로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안전한 도로는 육아를 하기에 완벽한 장소 같았고,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 사람을 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의혹(?)을 제기했다.

 

 "오빠, 아무래도 여기서 나만 직장인 같아. 애 등원시키다가 같은 반 엄마들 마주치면 다들 옷도 편하게 입고, 동작 하나하나가 느긋해 보여. 나는 바로 출근하려고 화장 다하고 가방까지 들고 가는데."

 

 의심은 곧 현실이 됐다. 부모 참여수업일(어린이집에 부모를 초대하여 함께 활동하는 날)에 마주친 걸 계기로

알음알음으로 파악한 결과, 같은 반 12명 아이 중 엄마가 '워킹맘'인 집은 우리를 포함하여 세 집 밖에 없었다. 아내가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녀들의 모임은 언제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평일 오전이었기에. 그나마 나머지 일하는 엄마들 중 한 명은 학원장, 한 명은 의사라고 했다. 소위 '일반 회사원'은 우리뿐이라는 사실이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 모두 당시로선 드물었던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그런 사교모임(혹자는 정보교류 모임이라고 하지만)은 안 가도 그만이라 여기며 '멘탈 관리'를 잘하는 편이기에, 모임 참여 여부에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단지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을 뿐이다.


 '이상하다. 내 주변은 거의 다 맞벌이인데. 요새 같은 세상에 둘이 안 벌면 가계(計)가 유지되나?'


 '남편이 잘 벌어서 외벌이로도 충분한 건가? 아니면 원래 돈이 좀 있는 집인가?'


  속물적이라면 속물적인 생각이지만 '영끌 맞벌이' 부부에겐 너무나 궁금한 부분이었다.

 

  부러워만 하던 강남 신축 단지로 이사 온 뒤로도 의문을 풀리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휴직 중인지 등은 상대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먼저 물어보기엔 민감한 정보니까. 다만 엄마들이 평일에 아이들을 등하원 시키는 모습에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곁에 두고 테이블에 앉아 수다 떠는 모습에서 여전히 전업주부 비율이 높다고 예상할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간혹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놀아주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퇴근 후 가방을 벗어 놓을 새도 없이 놀이터로 아이를 보러 오는 부모들을 볼 때마다 묘한 동질감과 안도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다 오전 반차를 쓴 김에 엄마들 모임에 나간다던 아내가 곧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온 날을 기억한다. 한 아이의 엄마가 갑자기 시간이 안된다 했더니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모임이 바로 다음날 같은 시간으로 미뤄졌단다. 그렇다고 휴가까지 써가며 참석할 모임은 아니라 그냥 안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일 시켜서 미안"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뭐래, 내가 좋아서 일하는 건데"라고 어이없어하는 아내의 반응이 고마웠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단지 내 어린이집까지 도보로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집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사 오고 나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 유치원은 셔틀버스가 오기에 어린이집과의 거리는 이제 아무 상관이 없어졌. 원칙적으로 어린이집이 만 5세 아동까지 보육이 가능함에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3세부터 바로 유치원에 보내는 동네 분위기는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요가 너무 없어 3세 반이 아예 없어져 버릴 줄은 몰랐네.


 아직 화장실 가는 것도 편하지 않은 아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유치원에 보낸 뒤, 이번엔 또 우리 아이만 영유(영어유치원)를 고려해보지도 않고 일유(일반유치원)에 보낸 사실을 알게 된 건 몇 달 후의 일이다.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 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어찌나 부러워 했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