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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삽니다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 음. 일기

by 선선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너는 먹기 위해 사니 아니면 살기 위해 먹니?라고. 나는 당연히 먹기 위해 사는 거지!라고 말하는데 누군가는 이해를 해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가 먹기 위해 살지 일하기 위해 사냐고.


내가 이 곳에 글을 쓰게 된 건 100퍼센트 자의는 아니었지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음식 얘기였다. 특히 당시 외국에서 지내면서 너무나도 많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접했었고, 돌아와 보니 한국은 마라 열풍이 불고 있는데 내 친구들이 중국에서는 마라탕을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하는 걸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9회에 걸쳐 글을 썼지만 아직도 못 쓴 말들이 마음에 남는다. 체코에서 먹었던 꼴레뇨 얘기도 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네덜란드의 음식 얘기들도 하고 싶고, 내가 먹은 중국 음식만 해도 20가지가 넘을 텐데 이제 어디다가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외국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면서 먹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먹기 위해 살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살면서 내 가장 소중한 취미는 맛집 찾아다니기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곧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 아니면 매운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외국에서도 떡볶이를 찾고 김치찌개를 만들며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셔도 해장은 꼭 라면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 삼겹살을 먹고, 추운 겨울이 오면 회 생각이 나는 그런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특히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내 주변에 참 비건 친구들이 많았다. 그전까지는 한국에 베지테리안이나 비건 문화가 알려지기 전이어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없었는데, 유럽 친구들은 자신이 비건임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고 언제나 건강하게 먹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처음에는 신기하게만 느껴졌었다. 물론 고기 러버인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가장 먼저 삼겹살을 먹어야지 생각했던 내가 친구들을 보면서 하루아침에 비건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서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비건인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걸 보며 지난날의 내 식습관에 대해 반성도 했었다. 가장 친했던 인도 친구들이 모두 비건이었는데 아예 치즈나 계란도 안 먹다 보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메뉴가 너무 한정적이라 속으로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창피한 일이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국에서의 나는 매일 같이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시험기간에는 1일 2 커피도 마다하지 않으며 바쁠 때는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으며,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다고 해도 언제나 짜고 매운 음식만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아직 비건을 실천하는 것도 아닌데 비건을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영양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라 무조건 적으로 특정 식습관이 몸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노력이 확실히 앞으로의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며, 한 편으로는 나의 기존 식습관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KakaoTalk_20191214_120411169.jpg 햄이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


깨달음을 얻은 후 한동안은 유럽에서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는 나만의 운동을 했었다. 과일이 비교적 저렴하니 많이 먹고(체리가 정말 싸다), 야채를 많이 먹어두자는 의지로 매 끼니는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노력을 했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지금, 그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원래의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는데 샐러드가 눈에 들어오겠나,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시 매운 게 당겼고 학교 주변에는 온통 자극적인 음식뿐, 그리고 시간이 없으니 안 그러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라도 사 먹자는 마음이 들어 인스턴트를 가까이하고 있다. 물론 커피가 없으면 하루가 상쾌해지지 않는 건 기본. 건강하게 먹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원래 식습관을 되찾은 게 참 웃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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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확실히 유럽에 있을 때보다 인스턴트를 많이 먹는 지금 소화가 잘 안되거나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등 내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름 메모도 적어서 바탕화면으로 해놓고 볼 때마다 위 항목들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인스턴트랑 단 것 찾는 습관만 줄여도 조금은 더 건강해질 텐데.


그래도 부끄럽지만 난 아직 떡볶이를 제일 좋아하고 마라탕을 일주일에 한 번씩 먹으며 지금 같은 시험기간에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시험만 끝나면 건강한 음식을 먹자는 다짐과 함께. 난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니 길게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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