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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저랑 밥 한 번 드실래요?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음. 일기

by 선선

최근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얘기를 보고 한참 동안 웃은 적이 있었다. 밥에 미친 한국인이라는 내용이었는데, 말 그대로 얘기할 때 '밥' 없이는 얘기를 할 수 없는 한국인의 특징을 콕 집은 유머였다. '밥 한 번 먹자' 말고도 재수 없는 사람에게 '밥맛'이라고 한다느니,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싶을 때 '다음에 밥 살게'라고 하거나, 아픈 사람에게 '밥은 챙겨 먹었어?'라고 한다는, 그러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가 매일 같이 사용하는 그런 말들에 모두 '밥'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나도 아마 가장 많이 한 말이 '우리 밥 한 번 먹자~'였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한 번도 내가 그렇게까지 '밥' 얘기를 많이 하는 줄 몰랐었는데 위 글을 처음 보고 웃기면서도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루 세 끼 중 밥이 한 번이라도 없으면 불안해한다. 심지어는 고기를 먹을 때도 꼭 밥과 함께 먹어야 하고, 하루 세 끼를 빵이나 다른 걸로 채우면 왠지 모르게 식사한 느낌이 안 들어서 꼭 밥을 먹어줘야 한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외국에 살게 되니 밥을 찾는 게 더 심했었다. 사실 유럽에서는 밥이 주식이 아니니 내가 신경 써서 해 먹지 않으면 빵이나 샐러드 등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밥을 해 먹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밥에 집착할까.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밥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한국인은 밥심

유럽에 살면서 괴로웠던 게(?) 그들은 대부분 학교에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그게 말만 도시락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락이 아니라 그냥 빵에 치즈 하나 얹은 걸 도시락통에 넣은 걸 식사라고 챙겨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점심을 친구들과 같이 먹자니 나도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데 평소 먹던 밥을 싸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맨날 나만 카페테리아에서 돈 주고 사 먹자니 괜히 손해 보는 느낌도 들고, 근데 맨날 빵만 먹기는 싫고. 매일 빵만 먹어대는 친구들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매일 점심을 똑같은 빵을 먹을까 이해가 가질 않고, 유럽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는 나도 그들의 생활에 맞춰야 하니 빵을 들고 다니면서 먹기는 했는데 그럴수록 저녁에 밥, 라면 생각이 더 간절하게 나면서 점심에 도통 힘이 나질 않았었다. 그때 비로소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생각이 나며 고향이 약간 그리워졌달까. 나도 외국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외국 친구들도 항상 밥을 먹어야 살아가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유난히 심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이 생활하던 한국인 친구들이 모두 밥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암묵적으로 저녁 시간은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이었는데, 심지어는 밥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외국 친구들의 초대도 몇 번 거절하기도 했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외국 친구들은 너네 한국인들은 항상 밥을 같이 먹냐, 매일 한식을 먹으면 질리지 않냐(그럼 빵은?) 등등 질문 공세를 퍼부었지만, 어떤 얘기를 들어도 우리에겐 밥 먹는 게 소중했기에 밥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약간 Too Much Information이지만 웃겼던 건 그래도 중국 친구들과 일본 친구들은 이해해줬었다. 나가보니 소중한 같은 문화권 사람들..


KakaoTalk_20191130_215804769.jpg 부족하지만 함께 밥 해 먹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커서 보니 '밥을 먹는다'라는 게 단순히 식사를 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의식이자 유대감을 쌓는 중요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 정이 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과 밥 한 끼 먹는 게 소중한 시간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사실 1인분의 밥만 해서 혼자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밥을 해보면 알겠지만 1인분의 밥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밥을 먹으면 반찬이 무조건 있어야 하기에 햄버거나 스테이크처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고 남은 것 없이 치우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밥은 혼자보단 둘이 좋고, 둘보단 셋, 셋보단 넷이 먹을 때 더 좋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게 되면 내가 먹을 것만을 위해서 요리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밥을 먹을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요리하는 과정에 함께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최근까지 방영된 '삼시 세 끼'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방영한 '삼시 세 끼 산촌 편'을 제일 좋아하는데, 프로그램 내용의 반 이상이 식사 준비지만 출연자 세 명 중 누구도 개인이 먹을 것만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내가 한 음식을 남이 맛있게 먹어줄 때 좋아하고, 함께 맛있게 먹을 게 뭐가 있을지 하루 종일 고민하는 모습은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던 따뜻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내가 함부로 외국의 식사 문화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들의 식사 문화를 모르는 점이 많고, 각 국가마다 형성되어 온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충분히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시 세 끼'와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또 거기에 공감하는 모습은 확실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반찬 없으면 섭섭하지

그러나 최근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우연히 봤는데, 한국인의 쌀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고 반대로 빵 소비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17년에는 쌀 소비량이 61.8kg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니, 2019년 현재는 어쩌면 더 감소했을지도 모른다. 이걸 마냥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지,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전에 비해 한국인들이 쌀을 적게 소비한다는 건 사실이다. 이 통계를 인용한 기사는 결론적으로 한국인들이 빵을 많이 먹는다, 식습관이 점점 서구화되어 가고 있다고 얘기해졌는데 문득 그 글을 보며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이 서구화된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외국에서 잠시 살며 발견한 것은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근에 빵, 피자 등을 많이 먹는다고 해도 흥미로운 건 그 빵마저도 밥과 반찬의 관계와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외국에 가니 아무리 그들이 빵을 맛있게 한다고 해도 한국 빵들이 그리웠는데, 주로 피자빵, 샐러드 빵, 고로케 등을 좋아하던 나에게 크로와상, 바게트 같은 빵은 심심해도 너무 심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자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빵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올라간 게 다인 이탈리아 오리지널 피자들은 자꾸만 한국의 불고기 피자, 포테이토 피자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이후에 깨달은 건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좋아했던 빵들이 그동안 매일 먹었던 밥과 반찬과의 관계와 닮아있었기 때문에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그냥 먹어도 될 빵에 굳이 샐러드를 올리고, 피자에 감자도 모자라 불고기까지 올려서 먹는 한국인들 식성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밥과 반찬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식과 부식이 분리된 형식의 식사를 해왔었다. 밥이 있으면 국이나 반찬이 항상 있어야 하고, 때문에 매 끼마다 밥과 함께 무엇을 먹을지 귀찮으면서도 신나는 고민을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것이 서양의 식문화와 가장 다른 동양 식사 문화의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밥과 반찬을 함께 먹는 건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 있는 빵이나 피자 등을 생각해봤을 때 유난히 한국에서 반찬을 찾는 문화가 더 심한 것 같긴 하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자. 내가 스파게티를 먹을 때 피클을 항상 찾지는 않는지, 카레 먹을 때 김치 생각이 나지는 않는지. 어쩌면 '밥'먹는 걸 좋아하는 건 밥도 그 자체로 좋지만,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반찬이 있기 때문에 밥이 더 소중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나는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를 밥과 함께했다. 그리고 내일도, 내일모레도, 내가 죽기 전까지 아마 나는 밥을 계속 먹고살 것이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데 20년이 넘도록 밥을 먹으며 그 전에는 밥이 소중한 걸 모르고 살았었다. 유럽에 나가서 나에게 '너 밥 안 먹어도 돼. 빵으로 식사하면 돼'라고 말해주니 그 때야 밥이 소중한 걸 깨닫게 된 거고. 그래서 그냥 한 번쯤은 이렇게 '밥'에 대한 소소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도 스스로 깨닫고,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아, 그리고 해가 바뀌기 전에 '밥 한 번 먹자'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연락 한 번씩 해주자. 어디선가 그 누군가는 내가 던진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배경 사진 출처: https://www.gildedgingerbread.com/perfect-korean-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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