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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Oct 27. 2019

카르보나라는 원래 노랗다?!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음. 일기

예전에 그런 광고가 있었다. PD 수첩 혹은 불만제로의 콘셉트를 따왔는데, 바나나 우유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의 폭로로 "바나나 우유는 원래 하얗다고요!" 하는 그런 광고. 바나나 우유 하면 한국 사람들은 빙그레의 노란색 바나나 단지 우유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광고는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 광고가 말하려는 건 바나나 속은 하얀색인데 어떻게 노란색의 바나나 우유가 탄생하냐, 우리는 하얀색 바나나 우유로 승부 본다! 는 것이었고 어렸을 때라 광고로 인해 많은 수익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마케팅 측면에서는 나름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마치 바나나 우유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정 반대의 오해를 받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카르보나라다.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메뉴를 정할 때 많은 사람들은 보통 까르보나라하면 하얀 크림소스로 요리된 음식을 생각한다. 이로 인해 느끼해서 까르보나라를 싫어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사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르보나라는 하얀색이 아닌 노란색을 띤다. 나도 처음 정통 카르보나라를 마주했을 때는 내가 한국에서 먹던 모양새와 달라 많이 당황했는데, 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이탈리아 셰프라도 와서 바나나 우유 광고 같은 카르보나라 광고를 찍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바나나의 속은 하얗기 때문에 하얀색이라지만 카르보나라는 원래 어떤 재료를 사용하길래 노란색을 띤다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하얀색 카르보나라를 먹고 있는 것일까?




이탈리아에서 왔습니다

내가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조금 놀랐던 사실은 우리나라만큼 어느 길거리에나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는 건 아니었고, 게다가 이탈리아 음식점에 모두 파스타를 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파스타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솔직히 얘기하면 유럽, 그중에서도 파스타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가 있는 곳에 가서 마음껏 파스타를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파스타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피자의 종류는 다양하고 사람들 모두가 쉽게 즐기는 모습을 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만큼 파스타를 많이 먹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내가 간 이탈리아 식당들에서 파스타를 팔지 않기도 했었고. 물론 모든 식당이 그런 건 아니지만 당연히 서양 국가들은 파스타를 더 마음껏 먹을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충격과 실망감에 빠지게 되었고 집에서 열심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집에서 해 먹는 파스타는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아직까지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기대하던 이탈리아 음식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이탈리아 음식은 많이 달랐었다. 내가 살던 곳이 너무 북쪽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오히려 국가들이 굉장히 밀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만의 음식이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놀랍기도 했었다. 아무튼 이탈리아 음식에 실망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같이 생활하던 이탈리아 친구들도 매일 그들의 피자와 파스타를 그리워했으니. 참고로 내가 한국 음식 그리워했던 것보다 더 많이 그리워했던 것 같다. 본인들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굉장히 강했고. 항상 얘기할 때면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 + 농담 반 섞인 말이었지만 유럽에서 이탈리아 음식만큼 맛있는 건 없다는 듯이 얘기했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이런 이들의 말과 파스타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낮출 수 없어서 나는 결국 중간에 연휴를 이용해 이탈리아에 가기로 결심했고, 같이 간 친구들에겐 아직까지 말 못 했지만 사실 이탈리아 여행의 반은 음식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고, 피자와 파스타를 사랑하던 나에게 이보다 좋은 나라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이탈리아에서 나의 목표는 파스타를 매일 다른 종류로 먹어보는 것이었고,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파스타 생각은 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껏 먹고 가는 것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80퍼센트 성공이었다. 나머지 20퍼센트는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아 파스타에 소홀했던 나의 미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하자. 결론적으로 정말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를 먹어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단연 카르보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토마토소스 파스타 종류를 먹거나 크림소스 종류를 먹을 때면 반드시 피클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카르보나라를 도전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었다. 여긴 피클도 주지 않는데 내가 과연 끝까지 카르보나라를 먹을 수 있을까? 만약에 맛이 더 느끼하면 어쩌지? 등등. 그래도 기왕 왔으니 오리지널 카르보나라를 먹어보자는 생각과 친구들의 재촉에 못 이겨 시켰지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카르보나라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고, 조금 짜긴 했지만 오히려 크림소스가 담긴 카르보나라보다 개인적으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언제까지나 개인의 입맛이니 알아서 판단할 것)그러나 처음 음식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어? 왜 하얀색이 아니라 이렇게 노란색의 꾸덕한 음식이 나왔지? 였다.


라스페치아의 한 식당. 음식을 받고나서 경건해진 우리.



카르보나라? 까르보나라!

사실 카르보나라로 불리든 까르보나라라고 불리든 큰 차이는 없다, 약간의 발음의 차이일 뿐.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까르보나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이 음식은 원래 이탈리아의 석탄 광부들이 즐겨먹었던 음식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광부를 뜻하는 Carbonari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고, 카르보나라에 후추를 뿌려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당시 석탄 광부들이 일을 하다가 카르보나라를 먹을 때 위에서 석탄 가루가 밑으로 내려와 그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래에 관련된 이야기는 정확하게 문서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당시 석탄 광부들이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는 금방 상하지 않는 재료들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필요했는데, 카르보나라는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였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포크를 들고 우아하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카르보나라를 그 어두운 탄광에서 먹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지만. 금방 상하지 않는 재료들은 바로 페노리코 치즈와 구안찰레라는 햄 종류였고, 이에 소스로 노른자를 풀어 요리한 것이 바로 전통식 카르보나라다. 우리에겐 페노리코 치즈와 구안찰레라는 햄 모두 익숙하지 않은데 보통 현재는 구안찰레 대신 미국식 베이컨을 사용하거나 셰프에 따라 다양한 치즈를 사용하고 있고 그 맛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전통식 요리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가 다른 식의 카르보나라를 접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카르보나라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고급 요리? 혹은 격식을 차릴 때 가는 이탈리안 식당에 있을 법한 음식 정도로 여겨지지만 막상 본 고장에서는 우리의 떡볶이 같은 일종의 길거리 음식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고급 식당에서 카르보나라를 찾지 말 것!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말 것!


위에서 말했지만 정통 카르보나라는 계란 노른자와 치즈를 베이스로 해서 만들고 그 외에 크림소스가 들어가는 일은 없기 때문에 노란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 음식이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미국식 베이컨과 크림소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카르보나라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카르보나라는 크림소스 파스타이며,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많은 음식점에서 카르보나라와 크림소스 파스타를 구분해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후부터는 카르보나라가 원래 노란 아이였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이탈리아에선 이렇게 먹는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인터넷이 발달하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유럽에 갔다오면서 외국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해당 국가의 음식을 먹는 방식이나 만드는 방식을 존중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도 생각하면 김치찌개가 유명해져서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요리가 된다면 그것 자체는 좋지만 만약 외국에서 김치찌개에 올리브를 넣어먹는다고 해서 한국에서까지 올리브 김치찌개를 찾게 되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할 테고. 당연히 카르보나라가 시간이 지나고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형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들만의 요리는 원래 어떤 모양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혼동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고 가면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식당에서 카르보나라와 크림소스 파스타를 혼동하고 있다면 속으로라도 이건 카르보나라가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든다면 나는 이 글을 쓴 목적을 반쯤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혹시 정통 카르보나라의 맛이 궁금하다면 이번 주에는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에 가서 제대로 된 카르보나라의 맛을 느껴보시는 건 어떤지. 물론 모두의 입맛에 맞을 거라는 얘기는 안 했다!



보너스 - 이탈리아 패스트푸드 계의 보물

사실 내가 이탈리아에 간다는 친구들에게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는 이탈리아의 간식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밀라노에만 있는 가게지만. 다만 판제로티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길거리 음식이니 검색하면 충분히 이탈리아 전역에서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탈리아 음식을 검색해서 이 곳에 들어왔는데 마침 밀라노에 있다고 한다면 들러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빵집이 하나 있다. 바로 Panzerotti Luini라는 곳이다. 말 그대로 판제로티를 파는 가게인데, 판제로티는 우리나라의 고로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바삭한 빵 안에 치즈를 비롯한 각종 재료를 넣어 한 손에 들고 길거리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이탈리아의 대표 간식거리 중 하나로, Luini에 가면 치즈와 햄을 넣은 한 끼 대용뿐 아니라 달달한 잼을 넣어 디저트 식으로 만든 판제로티까지 즐겨볼 수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밀라노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많이 고민하는 모습을 봤는데, 꼭 훌륭한 한 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게다가 아직 한국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음식이니 도전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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