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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Nov 02. 2019

초록색 병에 담긴 것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음.일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다. 맥주를 생각하면 어떤 색의 병이 떠오르나, 갈색 병 아니면 초록색 병? 아마 국내산 맥주를 생각하신 분들은 갈색 병에 담긴 맥주를 생각했을 것이고, 수입 맥주를 자주 접하는 분들은 (요즘에는 초록색 병을 쓰는 국내산 맥주도 있지만) 아마 초록색 병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아주 새로운 시각이지만 이번 주제에선 초록색 병에 담긴 맥주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록색 음식이 언제 나오나 기대하던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처음 주제를 정할 때 초록색 음식을 다루는 주에서는 이 맥주에 대해 꼭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해외의 맥주들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나도 맥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이네켄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초록 병에 빨간 별이 박혀 있는 하이네켄은 맥주를 모르는 사람들도 본 적은 있다고 말할 것만 같은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하이네켄 병은 초록색일까? 우리가 하이네켄을 마실 때면 가끔은 마치 갈색 맥주가 아니라 초록색 탄산을 마시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이 맥주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자꾸만 술에 대한 콘텐츠를 다루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지는 외국 맥주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네덜란드의 자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네덜란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튤립, 풍차?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도 네덜란드에 가보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오죽하면 지금 생각하니 정말 이상하지만 왠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 하나쯤 품에 안고 다닐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라고 상상했었다. 우리가 삼시세끼 김치를 먹지는 않는 데 말이다. (물론 거의 맞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네덜란드에 대해 나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네덜란드로 처음 향할 때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럽 여행을 한 사람들이더라도 네덜란드를 갔다 온 사람들은 많이 없었고, 어떤 곳인지 물어보더라도 그냥 예쁘다, 튤립을 진짜 판다 등등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들 뿐이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 여행을 기획하던 중 유명한 관광 코스 중 하나로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하이네켄이 네덜란드의 브랜드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이네켄의 소개에 따르자면 1873년 제라드 하이네켄이 지금 암스테르담 중심부에 땅을 구입하여 양조장을 건설하고 네덜란드 최초의 프리미엄 라거 맥주를 생산한 게 시초였다고 한다. 이 양조장이 지금까지 암스테르담 중심부에 남아있어 관광객들에게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양조장이 이렇게나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것과 암스테르담의 건물이 대부분 조그맣고 낮은데 큰 건물이 홀로 우뚝 서있는 점이었다.


하이네켄 양조장의 모습


실제로 내가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브랜드인 하이네켄 맥주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었다. 아무래도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고유한 맥주를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에(ex. 벨기에 - 스텔라 아르투아 & 호가든, 독일 - 바이젠, 체코 - 필스너 우르겔 등) 각국의 맥주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각자 강하고 해당 국가에 가면 그곳의 맥주를 꼭 마셔봐야 한다고 사람들이 얘기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에서는 하이네켄과 암스텔 비어가 인기가 매우 많아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다. 만약 외국인들이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우리나라 맥주를 꼭 마셔봐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을 텐데. 맥주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일단 맛을 구별하는 것부터가 힘들었고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가 낯설게 느껴졌었다. 아무튼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이네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는 것.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유명 브랜드들 중 하나로 하이네켄이 속해있다는 점이 멋있기도 했고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초록색 옷 입기

하지만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가도 맥주를 마실 때면 언제나 갈색 병의 맥주가 나왔는데, 유난히 하이네켄만은 항상 초록색 병에 담겨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해외의 맥주라고 모두 같은 색의 맥주병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또 최근에는 국산 맥주도 초록색 병을 사용하여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어떻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많은 술을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초록색 병에 담긴 맥주를 생각하면 하이네켄이 떠올랐고, 뭔가 그들만의 특별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초록색 병 위에 박힌 빨간 별과 (하이네켄 측에 따르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e'는 하이네켄의 상징이 되었고, 이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건 사실이다.


하이네켄 로고의 역사


맥주는 햇빛에 취약한 보리, 홉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위스키 병과 같은 투명한 병에 담아 판매될 경우 햇빛에 노출되어 맥주 색이 변하거나 심지어 맛이 변질될 위험까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원래 맥주는 두껍고 짙은 색의 병에 담겨 유통되고 있는 것인데, 2차 대전 이후로 갈색 병이 모자라 많은 수입 맥주들이 초록색 병에 담아 맥주를 판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이네켄도 아주 옛날에는 갈색 병에 담아 맥주를 판매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네켄은 다른 맥주 브랜드들 보다도 이 초록색 병을 자신들만의 브랜드 이미지로 만들어 지금까지 어떤 맥주보다도 청량한 이미지를 지속시키고 있다. 또한 하이네켄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이네켄의 로고 또한 크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도 하이네켄이 아주 예전부터 자신들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초록색 옷을 어떻게 입게 되었는지가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초록색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그 승자는 바로 하이네켄!


재밌었던 점은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를 신청하여 하이네켄 양조장 안에 들어가면 내가 직접 하이네켄이 되어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물론 기계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생산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우리가 마치 맥주가 된 것처럼 하이네켄의 초록 병 안에 들어가는 경험을 상상으로나마 해볼 수 있다.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경험.


하이네켄 병 안에 들어가는 중이다


건강한 음주 문화, 책임은 당신에게

하이네켄 브랜드는 사실 브랜드 마케팅을 굉장히 잘하기로 유명하다. 그들의 광고는 언제나 톡톡 튀고 젊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로 유명하며, 우리에게 초록색 병의 빨간 별하면 하이네켄이 떠오르는 데도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도 그전까지 하이네켄을 즐겨 마시지는 않았으나 어느 나라의 브랜드인지 몰랐을 뿐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라는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브랜드 마케팅을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음주 문화를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네켄 회사가 인상적인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음주에 따른 책임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홈페이지에 가면 '책임감 있게 하이네켄 즐기기'라는 카테고리가 있는데 이 곳에서 하이네켄 캠페인이나 실천 방법 등 기업에서 제공하는 여러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이네켄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모든 홍보자료나 상품에 'Enjoy Heineken Responsibly' 로고를 표시하여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네켄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캠페인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홍보대사로서 직원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교육 과정에서 녹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나뉘어 각자 음주 습관에 맞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기존에 접했던 주류 브랜드들도 물론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었으나 하이네켄이 제공하고 있는 방식은 매우 선도적이면서도 체계적이다. 어떻게 보면 주류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윤 창출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주저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를 과감하게 강조하는 모습이 과연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이구나 싶다. 네덜란드에서 짧게 살았지만 내가 봤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하이네켄 양조장 안에서 발견한 '건배'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맥주를 접하는 건 정말 쉬웠다. 그들은 낮에도 식당에서 한 잔, 카페에서 한 잔 맥주를 함께 마시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술이라고 느끼기보다는 하나의 음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했다. 여유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문화. 물론 유럽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맥주를 즐기는 건 아니고, 독일 일부 지역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 반면 이탈리아나 다른 지역에서는 회사 점심시간에도 술을 함께 곁들이기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에 나와서 술을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우리가 꿈꿔오던 것 아니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저렇게 하자! 마냥 그들이 부럽다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도 맥주를 즐길 수 있구나 이해하고 우리도 언젠가 나중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이 정도는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만 하이네켄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그에 따른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 네덜란드 어로 건배는 'Proost'이다. 다음에 하이네켄을 마실 때는 네덜란드 정신으로(?) 건배 대신 proost! 를 외치며 마셔보는 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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