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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Oct 19. 2019

주황색 음료가 모두 환타는 아니랍니다?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음. 일기

주황색 음식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 사실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트볼에 대해 얘기해볼까? 했지만 그건 주황색이 아니고. 스페인에서 먹은 빠에야? 그건 나의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더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는데, 바로 유럽에서 마셨던 아페롤 스프리츠라는 술이었다. 벌써부터 술에 관련된 콘텐츠를 다루는 게 맞나 싶지만(!) 일단 19세 미만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생길 수 있으니 뒤로 가기를 눌러주기 바란다. 사실 아페롤 스프리츠라고 얘기하면 아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아마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왜냐하면 나도 유럽 거주 3개월 차에야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지난번에는 모두가 아는 음식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번 주에는 낯선 음식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우리가 마시는 것과 외국인들이 마시는 게 뭐 다르겠냐 했다마는 정말 다르더라. 우리는 칵테일이라고 하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007에 나온 마티니?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에 그 모히또? 여기 여러분들이 목록에 추가할 또 하나의 칵테일을 소개한다. 아페롤 스프리츠는 도대체 어떤 술이길래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자그마한 꿈이지만 이 글을 읽고 스프리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우리나라에 저렴한 가격에 들어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우리의 첫 만남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매우 흔히 접할 수 있는 술로, 이름 그대로 아페롤이라는 술에 칵테일의 한 종류인 스프리츠를 섞어 만든 술이다. 아페롤(Aperol)은 술의 상호명인데, 스프리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스프리츠(Spritz)는 이탈리아의 프로세코(Prosecco)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의 한 종류로, 다른 술과 섞게 되면 000 스프리츠라는 그때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다. 


유럽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아페롤 스프리츠.


처음 아페롤 스프리츠를 본 건 내가 살던 도시의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한참 동안 우울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햇빛에 나와 친구들은 어디라도 가자는 마음으로 시티센터에 나왔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페롤 스프리츠를 마시고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보통 아페롤 스프리츠는 위 사진과 같이 널찍한 와인 잔에 얼음 가득 넣어 오렌지 슬라이스와 함께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따뜻한 커피 문화에 질려 있었던 나는 얼음을 가득 넣은 음료수가 너무 반가웠고 햇살을 받아 한껏 주황빛을 자랑하는 저 음료수가 문득 너무나도 궁금해졌었다. 이미 우리는 맥주를 시킨 터라 옆 테이블에 메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포기했지만 한참 동안이나 이름 모를 음료수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정체를 모른 채 잔에 담긴 음료를 보게 되면 당연히 환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 2n 년 인생에 주황색 탄산음료는 환타뿐이었으니까! 나와 같이 있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다 똑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유럽 사람들은 환타를 오렌지 슬라이스와 함께 와인 잔에 담아 고급스럽게 마시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이탈리아에 가서야 정체를 알게 되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아페롤 스프리츠가 엄연히 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술'처럼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환타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외국에 나간 후로 식사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먹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긴 했지만 차마 이 주황색의 음료수가 술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었다. 다른 술에 비해 도수가 낮고 맛도 달고 가벼워서 실제로 유럽 사람들은 도수가 높은 술 마시기에는 부담스럽고, 음료수 마시기엔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마신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술을 aperitif cocktail이라고 하는데 aperitif는 원래 식전에 나오는 술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참고로 그 반대는 digestifs cocktail이니 참고하길!) 


길가에서도 마실 수 있게 플라스틱 컵에 넣어 팔기도 한다.


나도 #spritzlife!

이 맛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유럽에 있는 동안 맥주 대신 아페롤 스프리츠를 식사에 곁들이게 된 횟수가 늘어났다. 특히 짠 음식과 매우 잘 어울려서 환타는 아니지만 정말 환타 마시는 느낌으로 마시곤 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며 검색하던 중 "The World's Best-Selling Classic Cocktails 2018"이라는 조사를 발견했는데, 이에 의하면 아페롤 스프리츠가 이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모두가 즐기고 있길래 당연히 예전부터 유행하던 술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치 한국으로 치면 깔라만시 소주처럼(!) 최근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간 술이라는 것에 놀랐다. 덩달아 나까지 유럽 인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은 건 비밀. 심지어 2019년에는 베스트 10 안에 아페롤 스프리츠가 들어갔다니 요즘 얼마나 핫한 칵테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언제 어디서 먹어도 부담 없는 술이기 때문일 텐데, 체코에서는 심지어 위 사진처럼 길거리에서도 플라스틱 컵에 넣어 아페롤 스프리츠를 팔고 있어서 더운 날씨에 갈증을 해소하기 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수가 낮은 술들을 저렇게 칵테일처럼 만들어서 팔면 판매량이 급증할 것 같은데. 페스티벌이나 푸드트럭 같은 데서만 볼 수 있는 게 아쉽다. 


하지만 결국 아페롤 스프리츠 또한 술이기에 건강에 좋지 않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도수가 낮다고 자꾸 먹다 보면 결국 해를 끼칠 것이라는 것. 어쨌거나 최근에는 #spritzlife라는 말까지 있다고 하니 유행이 맞기는 맞나 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지금 유럽에 계신 분들은 오늘 #spritzlife를 즐겨보시는 게 어떤지. 


인스타그램에 sprtizlife를 검색하면 정말 많은 게시물들이 뜬다.


저희 다른 술이에요!

최근에는 아페롤을 사서 소다를 섞어 집에서 간단하게 아페롤 스프리츠를 제조해 먹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단, 조심할 점은 같은 회사에서 나온 비슷하게 생긴 아이가 있다는 것! 바로 Campri라는 술이다. 두 술 모두 여름만 되면 저녁노을을 닮은 색깔과 함께 시원한 음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캄프리는 아페롤보다 도수가 훨씬 세다. (20.5도에서 28도 정도인 캄프리가 11도인 아페롤의 두 배) 색깔은 사실 캄프리가 더 진한 크림슨에 가까운 색이라고 하는데 진열되어 있을 때는 실제로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맛은 당연히 도수가 강한 캄프리가 더 진한 맛을 가지고 있을 텐데, 두 술 모두 오렌지의 상큼함과 달달함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타 먹으면 안 된다. 캄프리는 더 진한 맛에 어울리는 Negroni라는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 술이라고 하니 아페롤 스프리츠를 만들어 먹는 것은 불가능. 아페롤이 가볍고 달달한 맛에 최근에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현재 Campri 회사의 매출 1위라지만 그전에 오랫동안 캄프리는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술이었다고 한다. 같은 회사 출신이지만 엄연히 잘 나가던 선배님이니 무시하지도, 헷갈리지도 말 것!




유럽에서는 아페롤 스프리츠를 마시며 막걸리를 그리워했는데 이 곳에 와서 다시 아페롤 스프리츠를 그리워한다니 참 이상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글을 쓰며 다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아페롤 스프리츠라는 술만 봐도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테라스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먹던 모든 순간들이 다시 떠오른다. 아마 여름만 되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마치 우리가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를 생각하듯. 그 느낌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넓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을 뿐이고 지금 유럽에서는 이런 술도 유행처럼 마신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유럽 친구들에겐 그렇게 막걸리랑 소주를 소개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환타라고 무조건 생각한 것이 당시 좁은 세계를 살던 나의 여러 편견 중 하나이자 무지였다고 생각이 된다. 한국에 막걸리와 비슷한 아침햇살이 있는 것처럼 그곳에도 환타가 아닌 다른 종류의 음료수가 있을 수 있는 건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후에 나와 같은 생각으로 환타를 시키는 실수를 하지 않기 바라며, 지금 우리나라의 유행도 따라가기 벅찬 걸 나도 잘 알지만 하루쯤은 여유를 가지고 지구 반대편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는 게 유행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 제목 사진의 출처는 Cookie + Kate입니다. 그 외의 사진들에 대한 저작권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Classic Aperol Spritz Recipe [CookieandKate].(19.10.2019). https://cookieandkate.com/classic-aperol-spritz-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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