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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Oct 12. 2019

빨간 맛, 마라탕

무지갯빛 음식 일기 - 무. 음. 일기

비가 오는 날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다고 가정해보자. 빨간 국물이 있는 요리를 얘기할 때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릴 음식은 무엇인가? 라면? 짬뽕? 그러나 요즘 20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마 다수가 마라탕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근 20대 사이에 모든 재화·서비스 가격을 ‘마라탕 값’에 견줘 말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1 마라탕이 8000원이라고 가정할 때 4000원짜리 도시락은 0.5 마라탕인 것이다. 점심, 저녁 시간에는 마라탕 가게에 줄이 끊이지 않고 마라탕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소위 ‘문찐(문화 찐따의 줄임말로, 새로운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매운 마라 맛에 중독된 사람들 중 과연 마라탕이 중국에서는 어떤 음식으로 여겨질지, 가격은 어느 정도일지, 건강하다고 생각할지,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소문(중국에서는 마라탕 국물을 먹지 않는다?)은 진짜일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실 나도 마라탕 입문 2년 차지만 짧은 현지 마라탕 경험을 조금이나마 끄적여보려 한다.





마라탕, 소울푸드의 시작

나는 상해에서 약 5개월 간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에 갈 때 주변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중국 사람들은 마라탕 국물 안 먹는대~ 그거 엄청 안 좋아서 그런 거라는데~?'라는 말이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중국의 마라탕 국물이 건강에 매우 안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마라탕 국물을 먹는다는 것이다. 친구들한테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다 거기서 먹고사는 건데~' 했지만 약간의 위협적인(?) 말들에 나도 내심 걱정을 했더랬다. 


상해에서 처음으로 먹은 마라탕

내가 처음으로 먹은 마라탕은 학교 근처에 있었던 LAVEGE라는 곳이었다. 상해 첫 마라탕이라 사실 다른 곳도 다 여기 같은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조금 충격. 이 곳은 다른 곳과 다르게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평균 20-30원대) 알고 보니 위생을 중시하고 건강한 재료들만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급 마라탕 가게였던 것이다. 마라탕 가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진열대에 놓고 파는 재료들과 길가에 내놓은 큰 냄비에서 끓이는 육수인데, 여기는 재료들이 모두 비닐에 낱개로 포장되어 있고 조리 공간은 안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 확실히 깨끗하게 먹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리고 소세지파들은 싫어하겠으나 재료 자체도 건강함을 추구해서 완자, 소세지, 어묵 같은 재료들보다는 두부, 버섯, 곤약 등의 재료가 주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아마 비건들도 마음 놓고 마라탕을 즐길 수 있는 가게라고 생각한다. 다만 눈이 너무 높은 상태로 시작하여 나중에 이 곳을 많이 그리워했다는 후문.

인상적이었던 진열 방식



중국인들의 마라탕

그러나 보통의 마라탕 가게들은 이렇지 않다. 중국인들에게 마라탕이란 매우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며 우리로 따지면 떡볶이, 라면 등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가격도 매우 저렴한(평균 10-20원대, 한국 돈으로 현재 약 1700-3400원) 편이라 모든 국민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더 좋은 점은 중국의 배달 문화가 우리보다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마라탕을 짜장면 시켜먹듯 쉽게 시켜서 먹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난했던 유학생이었던 우리도 돈이 없을 때면 항상 조금의 재료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마라탕을 먹으며 행복해했었다. 때문에 반대로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어이없었던 부분이 바로 가격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최저 가격제가 있을 때라, 당연히 나는 중국에서 먹는 양 정도만 담았는데 '손님 이건 최저 가격이 안돼서 더 담으셔야 해요ㅠㅠ'라고 했었다. 일단 나는 최저 가격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리고 최저 가격조차 그렇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로컬 음식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마치 비빔밥이 외국에서는 12000원 넘게 팔릴 때도 있는 것처럼) 현지보다 높은 가격에 형성되기는 하지만 당시 나는 중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어서 그런지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결국엔 가격을 맞춰 먹긴 했지만. 


아직 한국은 재료의 가짓 수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중국의 마라탕 가게를 들어가면 재료 가짓 수가 정말 많다. 기본적으로 야채, 버섯 칸과 완자, 면 칸이 따로 나눠져 있고 완자도 치즈볼부터 안에 게알이 들은 완자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이거야말로 골라 담는 재미가 있는 음식.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료들도 있고, 모든 가게가 같은 재료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가게마다 다른 재료를 쓰는 것도 재밌다. 최근 한국에서 마라탕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누가 게알 완자 좀 한국에 들여왔으면 좋겠다. 치즈볼도. 참고로 중국인들은 토마토도 마라탕에 넣어먹는다.


속에 게알이 들은 완자


그러나 중국인들이 마라탕을 건강하게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물론 다양한 재료들을 조합해서 먹으려면 한 달 내내 먹어도 새로운 맛에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말 그대로 "서민음식"이긴 하지만 중국 사람들조차도 마라탕을 건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마라탕이 훠궈에서 유래하여 건더기만 건져먹는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향신료와 기름이 많고 염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보통은 국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들었던 흉흉한(?) 소문들이 아예 틀린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마치 우리가 라면 국물까지 다 먹진 않는 것처럼 그들도 위험하다기보다는 건강을 생각해서 먹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국물 좀 먹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진 않으니 걱정 말 것. 그리고 한국의 경우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뼈 육수를 이용하여 국물을 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다만 어디든 기본적으로 기름이 많고 짠 음식이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한다면 빈도수를 줄이고, 먹을 때도 국물은 되도록 많이 먹지 않는 게 좋긴 하다. 



마라 00, 어디까지 아시나요

한국에서는 최근 마라 열풍이 부는 만큼 마라 치킨, 마라 떡볶이, 마라 감자칩 등 음식 앞에 '마라' 두 글자만 붙은 여태껏 보지 못한 혼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위에 언급한 것들을 먹어보진 않았으나 과연 맛있을지 항상 의문을 품고 있다.) 마라탕의 고장 중국은 '마라'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이 더 많다. 그중에서도 매운 걸 좋아하는 쓰촨, 충칭 사람들에 의해 탄생한 음식들이 많은데(마라탕 또한 쓰촨 음식), 한국 사람들도 이제 많이 아는 마라샹궈가 그중 하나이다. 마라샹궈(麻辣香锅)는 한자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솥을 이용한 요리이다. 향신료를 넣고 솥에 재료들을 볶아서 만든 요리인데, 얼얼한 맛, 매운맛, 향신료의 향 세 가지가 한 냄비 안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마라샹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마라샹궈가 마라탕보다 가격대가 있고 혼자 먹기는 힘든 음식이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도 많은 것 같긴 하다. 아마 솥에다가 볶는 요리라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 2인분 이상 제조하고 있다 생각되나 중국에서는 최근 마라샹궈도 1인분으로 배달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쓰촨 음식 중 마라촨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된다.  마라촨(麻辣串)은 꼬치(串)를 마라 국물에 담가 먹는 음식으로, 각종 야채, 완자, 소시지, 고기, 내장 등과 같은 다양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꼬치를 꺼내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마라촨은 중국 내에서도 주로 충칭, 청두에서 흔히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일각에서는 충칭, 청두 사람들이 마라탕보다 마라촨을 더 좋아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마라촨은 사실 마라탕(麻辣烫)과 촨촨샹(串串香)의 합성어인데, 국물을 끓여 먹는 마라탕과 향신료가 가득한 국물에 담근 꼬치 요리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식인 것이다. 훠궈의 한 종류인 촨촨샹 요리는 뜨거운 국물에서 건더기를 직접 건져먹지 않아도 꼬치만 빼서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촨촨샹


특이한 건 안의 재료들이 그간 먹었던 훠궈나 마라탕보다 다양했다는 것인데, 내장이나 혀, 닭발까지 꼬치에 있는 걸 보고 내 친구는 많이 기겁하기도 했었다. 또한 국물 같이 보이지만 거의 기름과 향신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먹는 데 어색하기도 했었다는 후문.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짧은 거주 생활을 하고 온 사람으로서 중국의 맛있는 음식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건 기쁘게 느껴진다. 다만 어디서든 외국의 음식이 그대로 들어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직 어색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음식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그리고 음식을 먹는 우리들 스스로도 이 음식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음식인지에 대해 알면 더 좋은 환경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요즘 날씨, 점심으로 뜨끈한 마라탕 국물 먹고 일주일 내내 몸에 쌓였던 찬 공기를 좀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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