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리 Jun 03. 2021

비소설

아무 의미 없습니다.

01.

축축한 냄새를 맡으며 이불을 개다가, 따끔.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02.

오늘은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 7시가 다 넘어서 장을 보러 나갔다 왔다. 비 오는 날 원체 나가길 꺼려하는 난데, 오늘은 섬유유연제가 꼬옥 필요해서 거리낌 없이 집에서 10분 거리 마트로 향했다. 직접 맡아보지도 않은 냄새. 인터넷에서 향이 좋다고 떠들썩하여- 마트 아주머니들이 추천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산대로 가져갔다. 참, 더불어 닭 안심살과 감자까지. 오늘은 끓여놓은 지 3일이나 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냉장고에서 기필코 꺼내 먹어야 한다. 음식을 남기는 건 좋지 않으니까. 내일 저녁엔 버터에 잘 구운 안심살에 구운 야채들을 곁들여 먹을 예정이다.




03.

밤마다 누구냐고 묻는 당신에 난 이제 질렸습니다.




04.

술을 잘 마시지 않던 당신은, 비가 오는 날이면 꼭 화이트 와인을 꺼냈다. 4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다니 놀랍지? 사실 아직도 그래.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습관적으로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 꼭 당신이 생각나서는 아니구. 얘, 이거 사랑 아니면 뭐게?




05.

햇감자에 버터를 발라 구워 먹어요.

아니

버터에 햇감자를 발라 구워 먹어요?




06.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일본 영화를 꺼내보고 싶었다. 나 오늘 밤에 영화 보구 자면 내일 큰일나겠지?




07.

모든 문장은 소설이다. 다만 소설이 아니다. 비가 오는 날엔 꼭 몇 문장 적어내야 한다. 비소설, 비 소설.




08.

전 사랑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걸요?

너무나도 순진한 문장. 그렇다면,

전 사랑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요?




09.

너희 부류는 다 그러니? 막 말도 안 되는 낭만이니 사랑이니 구린 서사를 지껄이고 그래? 많이 읽는 척, 많이 우는 척, 많이 아픈 척. 그렇게 해서 누가 너한테 날아가니.




10.

과거는 전부 잊자! 그때 너한테 썼던 문장들은 손으로 모을 수 있다면 잔뜩 구겨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 누군가가 배를 타다가 그 문장 쪼가리를 주워서 먹는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문장으로 세레나데를 할까? 내 문장은 훔쳐지는 걸까? 사실 내가 버린 문장인데. 아무렴 누군가가 주워서 써버린다고 한들. 부끄러운 말들이야.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은 전부 거짓이고 허세야.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