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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Jun 03. 2021

비소설

아무 의미 없습니다.

01.

축축한 냄새를 맡으며 이불을 개다가, 따끔.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02.

오늘은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 7시가 다 넘어서 장을 보러 나갔다 왔다. 비 오는 날 원체 나가길 꺼려하는 난데, 오늘은 섬유유연제가 꼬옥 필요해서 거리낌 없이 집에서 10분 거리 마트로 향했다. 직접 맡아보지도 않은 냄새. 인터넷에서 향이 좋다고 떠들썩하여- 마트 아주머니들이 추천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산대로 가져갔다. 참, 더불어 닭 안심살과 감자까지. 오늘은 끓여놓은 지 3일이나 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냉장고에서 기필코 꺼내 먹어야 한다. 음식을 남기는 건 좋지 않으니까. 내일 저녁엔 버터에 잘 구운 안심살에 구운 야채들을 곁들여 먹을 예정이다.




03.

밤마다 누구냐고 묻는 당신에 난 이제 질렸습니다.




04.

술을 잘 마시지 않던 당신은, 비가 오는 날이면 꼭 화이트 와인을 꺼냈다. 4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다니 놀랍지? 사실 아직도 그래.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습관적으로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 꼭 당신이 생각나서는 아니구. 얘, 이거 사랑 아니면 뭐게?




05.

햇감자에 버터를 발라 구워 먹어요.

아니

버터에 햇감자를 발라 구워 먹어요?




06.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일본 영화를 꺼내보고 싶었다. 나 오늘 밤에 영화 보구 자면 내일 큰일나겠지?




07.

모든 문장은 소설이다. 다만 소설이 아니다. 비가 오는 날엔 꼭 몇 문장 적어내야 한다. 비소설, 비 소설.




08.

전 사랑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걸요?

너무나도 순진한 문장. 그렇다면,

전 사랑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요?




09.

너희 부류는 다 그러니? 막 말도 안 되는 낭만이니 사랑이니 구린 서사를 지껄이고 그래? 많이 읽는 척, 많이 우는 척, 많이 아픈 척. 그렇게 해서 누가 너한테 날아가니.




10.

과거는 전부 잊자! 그때 너한테 썼던 문장들은 손으로 모을 수 있다면 잔뜩 구겨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 누군가가 배를 타다가 그 문장 쪼가리를 주워서 먹는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문장으로 세레나데를 할까? 내 문장은 훔쳐지는 걸까? 사실 내가 버린 문장인데. 아무렴 누군가가 주워서 써버린다고 한들. 부끄러운 말들이야.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은 전부 거짓이고 허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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