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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Apr 30. 2024

08. 제발, 죽지 말고 살아만 있어 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지난 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


"여보! 왜 그래? 왜 말이 없어? 응?"

"......"

"여보? 자기야??"


뭔지 모르겠지만 너무 이상했다. 전화기 속 남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쪽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엔가 기대앉아 있는 듯했고, 눈은 어색하게 깜빡거리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악!!!!!!!!!!!!!!!!!!!!!!!!!!"


너무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털썩 주져 앉았다. 비명소리에 놀란 친정부모님도 남편의 모습을 보시곤 "어머나! 왜 이러니?" 하고 외치는 소리에 이내 정신이 차려졌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정신을 붙잡고 남편에게 소리쳤다.


"여보, 여보, 내 말 들려? 내가 다시 바로 전화할게!! 걱정 마!! 금방 119 부를게! 사랑해!! 사랑해, 여보!!"  


전화를 끊고 우선 이탈리아 앞집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앞집 친구 Fabio(파비오)의 전화번호가 잘 찾아지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Pronto! (여보세요!) Ciao! Sonya. (안녕! 쏘냐.)" 굵고 낮은 Fabio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Fabio(파비오), 남편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지금 당장 구급차를 우리 집으로 불러줘!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바로 남편한테 가줄 수 있어?"


Fabio 가족은 함께 외출 중이었고, 마침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바로 우리 집으로 가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한국인 지인 중 한 명에게 연락을 했다.


"K대표님, 남편이 이상해요. 지금 앞집 통해서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요.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요. 앞집 Fabio 연락처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혹시 가능하시면 남편한테 가줄 수 있을까요..." 


덜덜덜 떨며 다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남편은 그 영상통화를 다시 받아주었다.


"자기야, 괜찮지? 내 말 들려? Fabio가 구급차 불렀어. 구급대원들이랑 Fabio가 곧 자기한테로 갈 거야. 걱정하지 말고, 전화 끊지 말고, 우리 기도하자!" 

"......"

"하나님,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두렵고 무섭습니다. 제발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지켜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울면 안 되는데... 놀라면 안 되는데....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말은 알아들은 걸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언뜻 기억나기로는 그때 친정집에선 심장 약한 친정엄마는 꼬마 이태리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느라 여념이 없으셨고, 친정아빠는 인터넷으로 남편의 증상을 알아보고 계셨던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남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큰 충격 때문일까? 몇몇 장면들만 사진처럼 남아 내 머릿속에 조각조각 뒤엉켜있다. 구급대원들이 들어온 장면, Fabio가 도착해서 그 상황을 영상통화로 보여주었던 것, 구급대원들이 현관 바닥에 맥없이 앉아있는 남편의 혈압을 체크하는 모습. 대략 이 정도만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얼마뒤 남편은 밀라노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남편이 실려간 응급실 앞에서 처음 만난 Fabio와 K대표는 상황을 서로 공유하고, 나에게 소식을 해 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에 같이 들어갈 없어 미안하다며... 의료진에게 번호를 전달했으니 연락이 올 거라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자고, 잘 될 거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너무 무서웠다.


그날밤은 핸드폰 속 아빠의 기도와 굿나잇 인사 없이 우리 꼬마는 잠이 들었다. 한국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었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최대한 요동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세게 감아도 핸드폰 6인치 속 남편의 어딘지 불편했던 모습이 진한 잔상으로 남아 계속 나를 짓눌렀다.


어떡해... 여보! 제발 죽지 말고 살아만 있어 줘요.. 제발.....



  




* 사진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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