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ya Jun 12. 2024

04. 시골생활 & 신앙생활

다시 일어서는 힘


2021년 9월 응급실 사건 이후, 1년 동안 재활하며 공들여 세운 탑이 와르르 무너진 듯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는 그 무서운 후유증으로 인해 수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했다. 잦은 응급실방문으로 재활치료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졌다. 겨우 몇 마디 더 할 수 있게 됐는데... 간단한 질문에도 동문서답하는 어린아이 같은 남편의 촛점없는 눈동자와 표정을 보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랐지만 남편은 확고했다. 전국을 돌며 공기 좋은 곳에서 며칠씩 쉬다 오기도 했고, 건강식부터 재활운동까지 나름 노력하고 있었다. 한 번은 산속 깊은 곳에서 요양을 하다가 또 쓰러졌는데 구급차가 빨리 오지 못해 마음졸인 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고난에 남편도 가족들도 지쳐갔다. 뇌졸중은 재활하면서 좋아지기만 하는 병이라는 말에 위로받고 잘 버텨왔는데... 우리에겐 쓰러진 지 1년 뒤가 더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끔찍했던 겨울이 지나고 친정집을 떠나 시골에 있는 시댁 옆으로 거쳐를 옮겼다. 한쪽엔 개울물이 흐르고 개복숭아 나무가 나란히 심어진 둘레길과 작은 시골 교회 사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이었다. 


차도녀까지는 아니지만 난 분명 도시여자였다. 서울, 모스크바, 밀라노 대도시에서 평생을 살았고, 도시가 편하고 익숙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의 삶은 완전히 나의 꿈과 멀어지는 듯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스카이라운지에서 고급진 식사를 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해 꾼 꿈'이 도시의 미래였다면, 

시골에서의 미래는 '죽음'과 같았다. 내 발은 늘 땅에 맞닿아 있었고, 내 삶이 그렇게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고 생각했다.  


온갖 불만이 쌓여 괜히 시골을 미워했다. 개울가에 앉아 시끄러운 물소리에 꺼이꺼이 눈물을 흘려보냈고, 텅 빈 교회에 들어가 하나님을 원망했다.  




집 옆으로 길게 펼쳐진 둘레길 앞에서 문득 패션쇼장 런웨이가 생각났다. 

지금쯤 '밀라노 패션위크'가 한창일 텐데... 여긴 냉이와 쑥이 머리를 내미는구나... 


둘째를 위해 밀라노에서부터 챙겨 온 이탈리아 명품 디럭스 유모차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유럽의 돌길에서도  흔들림에 강한 승차감 최고의 유모차였는데.. 잡초와 돌멩이가 무성한 시골길에선 어림없었다. 시골 작은 마을에 유일했던 '버건디색 유모차'엔 거미줄이 드리워졌다. 대신 그곳에는 일명 '할머니 유모차'로 불리는 체크무늬 어르신 보행보조기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도시를 가득 채우는 '밀라노 피아노 위크'대신, 쩌렁쩌렁 뽕짝에 취한 두릅축제가 열렸다. 이른 아침 에스프레소 향기를 청국장이 대신했고, 핸드메이드 두부와, 바로 따서 껍질째 가마솥에 찐 옥수수를 그때 처음 먹어봤다. 아이들에겐 흙과 모래, 보리수오디병아리강아지가 친구가 되어주었다. 큰아이가 심은 해바라기씨앗은 아이키를 훌쩍 넘어 진짜 해바라기 샤워기 같은 모습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겐 최고의 시간이었으리라.


집 근처 버스정류장. 도시의 버스정류장은 하루의 시작과 끝. 긴장이 맴도는 공간으로 기억되지만, 시골의 버스정류장은 언제나 공백이다. 개구리 울음소리, 컹컹 개 짖는 소리, 닭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정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시골길은 방심하면 안 된다. 아무도 없다고 긴장을 풀고 민망한 행동이나 함부로 말을 하면 밭에서 쓰윽하고 나오는 누군가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아.무.도.없.는 한적한 시골길은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우리 집 벽을 타고 사정없이 올라가는 넝쿨을 보며, 그 강인한 에너지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배웠다. 그렇게 내가 괜히 미워하던 시골에서 나는 삶을 배우고, 숙연해지며, 어느새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평생 뼈를 묻을 거라 생각했던 이탈리아에서 허망하게 귀국할 줄 상상도 못 했고, 도시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던 내가 발밑에 꿈틀거리는 작은 세상을 발견하고 다시 꿈꿀 수 있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했고, 창조주 하나님을 섭리를 조금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 삶엔 불편함과 어려움 투성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고된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고,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임을 믿기에, 오늘도 지치지 않고 뻗어 나가는 넝쿨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난에 빠진 누군가에게 나의 넝쿨손을 힘껏 뻗어 다시 일어서는 힘을 전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선물 같던 날의 악몽(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