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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슬 May 02. 2024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전

카레부문 특별상

90년대 카레는 엄마의 해방이었다.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식탁은 아빠의 욕망과 과시가 잔뜩 반영되었다. 자상하고 낭만적인 아빠였지만 음식을 선택할 때는 그저 독재자였다. 고소한 식용유에 바싹 튀겨낸 음식 대신에 보리굴비나 시래기 명태찜이 늘 올라왔다. 비스듬하게 자른 무를 넣은 된장국 외에는 국이 아니라는 그의 생각은 철벽 같았다. 연중무휴 식당의 고된 노동자 같았던 엄마는 언제인지 모르는 임시 휴업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행운을 기다리는 부엌 찬장 속 부적처럼 고형카레 2개씩을 항상 쟁여 두셨다. 이 영험한 노란 부적은 ‘아빠 출장’이라는 기적을 종종 보여주었고, 그날 저녁 메뉴는 영락없이 카레밥이었다.      


2000년대 카레는 나의 면죄부다. 먹거리가 다양한 요즘은 ‘편식’보다는 ‘취향’이라는 말로 아이입맛을 민주적으로 포장한다. 채소를 피하는 아이에게 편식이라는 기준 대신에 취향을 존중한다며 세련된 엄마인척 위선을 떤다. 하지만 엄마가 된 나는 아이 입 속으로 잘게 썬 채소를 얼렁뚱땅 넣을 수 있는 비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끝에는 카레가 있다. 강판에 양파를 갈아 넣으면 진한 카레 국물이 양파 향을 집어삼키고, 아이는 채소 없는 카레인 줄 알고 먹을 수 있게 된다. 바알갛게 동동 뜬 당근 몇 조각만 먹으면 나도 아이도 각자의 이유로 행복해진다.   

    

시간은 흘러도 카레는 엄마들에게 당당한 반칙이자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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