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원 Feb 07. 2022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요.

서툴고 소박해도 다정한 솜씨랍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아이를 재운 늦은 밤, 혼자 식탁에 앉아 고요한 공기를 벗 삼아 그림 그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리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육아에 온 힘을 다 쏟아도 또렷한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고 늦은 밤에 몰려오는 마음 한편의 알 수 없는 허전함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 그림을 그리고 나면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으니 자꾸만 그림으로 그리고 남겼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그려내는 그 시간을 통해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둘째도 어린이집을 가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우연히 그림 그리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미술 공방으로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더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향했다.


공방 사장님과 간단한 테스트와 면접을 거치고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교육을 담당하시는 분은 내가 그리는 그림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미술 전공하지 않으셨나 봐요?”


“앞모습이 이렇다면, 옆모습은 어떻게 입체적으로 표현하실 거예요? 균형이 안 맞아요.”


“이 기법은 어떤 건지 모르시죠?”


미술 기법과 용어들만 계속 이야기하며 추궁을 하는데 미술을 배워 본 적은 물론이요, 전공도 아니기 때문에 알 턱이 없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줄만 알면 괜찮다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찾아온 곳인데 내가 너무 몰랐던 걸까. 교육받는 내내 혼만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속으로 ‘잘됐다, 이 기회에 배우는 거지.’ 하고 지적받는 것조차 즐거웠는데 계속되는 지적에 설레고 부풀었던 마음은 어느새 점점 작게 쪼그라들었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하니 담당자에게는 평가가 불가피한 부분이었을 테다. 교육을 마치고 함께 일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그날의 일은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다.


물론 어디 가서 다시는 그림 그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지만 소심한 내 마음에는 그만 생채기가 나버렸다.



‘전공자도 아니고 제대로 그릴 줄도 모르면서 내가 무슨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겠다고..’


‘아니, 처음부터 전공자를 뽑는다고 하지! 그래도 오죽했으면 안 되겠다고 할까. 내가 재능이 없다보다 ‘


그 후로 자신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맛본 나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운 저녁부터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그림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던 내가 아예 손에서 펜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을까..


그래도 그 시간을 딛고 결국 나는 다시 아이들이 자는 틈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던 날, 마음이 헛헛하던 날, 행복하던 날마다 모두 남겼다.


인정받기 위해 그리지 않았고, 일을 하기 위해 그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누가 뭐라든 내가 좋아서 단지 그 시간이 즐거워 나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다시 그려나간 그림에 마음이 담긴 덕분인지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도 닿게 되었고, 나 홀로  보던 그림을 함께 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상처받아 좌절한 마음으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리고 기록하고 남기는 일의 행복함을 영영 놓치고 말았겠지.


살다 보면 가끔은 남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동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여전히 내 그림은 미술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비전공자가 손 닿는 대로,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려낸, 균형 따위는 하나도 맞지 않는 제멋대로의 그림이다.


하지만 이대로도 좋다. 앞으로도 누가 뭐라 하든 오래도록 이어나갈 생각이다.


나의 시선으로 그려낸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 나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그림을 오래오래.



마음을 다해 원하는 일을 앞두고 주저하고 있을,

수많은 누군가에게  일이 비로소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주저하지 말고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마음 그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