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츠오렌지 철도로 나누어진 가고시마 본선
일본 주요 4개 섬 가운데 두 번째로 작은 섬이자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규슈. 이곳에는 산요 신칸센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노선은 규슈 지방을 관할하는 JR 규슈 소속의 철도가 아니라 JR 서일본 소속이어서 실질적으로 규슈 지역에 신칸센이 도입된 것은 후쿠오카와 가고시마를 잇는 규슈 신칸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는 코레일이라는 독점 기업에 의해 철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일본은 국철이 JR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가 된 이후 지역 별로 6개의 여객 철도회사와 1개의 화물 철도회사로 분사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JR 규슈에서 관할하는 철도는 규슈 신칸센이라는 이름의 규슈 남북축 노선 하나다.
이 규슈 신칸센은 나란히 운행하던 가고시마 본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고시마 본선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전체 노선에서 중간에 일부 구간이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구간에는 제3 섹터 철도인 히사츠오렌지 철도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말은 원래 가고시마 본선 구간이었던 곳이 제3 섹터 철도로 이관되었다는 의미다.
JR 규슈 홈페이지에서 이 구간을 살펴보면 히사츠오렌지 철도는 별도의 노선처럼 표기되어 있다. 도호쿠 본선과 같이 제3 섹터 철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끝까지 제3 섹터 철도가 아니라 가운데 일부만 이렇게 이관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튼 이렇게 특이한 형태의 이관을 통해 가고시마 본선은 본의 아니게 두 개의 노선으로 나누어져 버렸다.
가고시마 현의 가고시마 본선(좌)은 간선 철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노선에 불과하다. 오히려 가고시마와 무관한 후쿠오카 현의 가고시마 본선(우) 노선도가 더 간선 철도 같은 느낌이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두 노선 모두 빨간색으로 표기된 노선 색이다.
그러나 같은 JR 규슈 철도라고 하더라도 두 지역의 열차는 서로 만날 일이 없다. 그 중간에서 히사츠오렌지 철도가 마치 휴전선처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열차는 다름 아닌 화물 열차다.
화물 열차의 경우 같은 연장선에 있는 철도지만 엄연히 다른 두 회사의 경계를 막힘없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 일반 여객 열차도 충분히 경계를 넘어 상호 운영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히사츠오렌지 철도 소속의 극히 일부 열차를 제외하면 경계를 넘는 열차를 보기가 어렵다.
가고시마 본선이 나누어지는 두 구간인 센다이역과 야츠시로역. 이 두 역의 선로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승강장은 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승강장은 마치 검문소처럼 설치된 히사츠오렌지 철도의 대합실을 거쳐야 갈 수 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이렇게 바뀐 환경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갈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히사츠오렌지 철도 구간은 도호쿠 지역의 이와테긴가/아오이모리 철도 구간과 달리 별도의 JR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JR에서 발행하는 패스권(ex JR패스, 세이슌 18 킷푸 등)을 이용할 때 히사츠오렌지 철도를 통과해서 가고시마 본선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두 구간은 철저히 분리된 상태다.
모든 일은 발생하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규슈 신칸센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 마주한 두 역의 운명을 바꾸었다. 우선 규슈 신칸센의 종착역이자 전체 신칸센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역이 된 가고시마주오역은 가고시마의 주요 역이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중심역이었던 가고시마역은 노선의 중간에 위치한 평범한 역처럼 바뀌었다.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 가고시마주오역은 니시가고시마역으로, 가고시마역의 서쪽에 위치한 중간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제 중심역으로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으며, 주요 특급열차도 가고시마역이 아닌 가고시마주오역에서 출발하기에 이르렀다.
가고시마역이 가고시마 현의 중심 역임을 알 수 있었던 흔적은 많이 남아있다. 가고시마 본선과 닛포 본선은 가고시마역을 기점으로 북쪽으로 출발한다. 가고시마 노면전차(트램) 역시 가고시마역을 시종착으로 하고 있고, 가고시마주오역으로는 지선 철도를 보듯 노선 도중에 빠져나온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 가고시마주오역은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에는 니시가고시마역이었다.
그래도 가고시마역은 JR 소속으로,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많은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히사츠오렌지 철도 소속으로 바뀐 아쿠네역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신칸센이 해안가에 위치한 이곳을 외면하고 내륙으로 관통하면서, 아쿠네역으로는 더 이상 특급열차도, 긴 편성의 열차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이곳으로 열차가 지나갈 때, 승객이 북적이는 시간은 통근 시간대를 제외하면 상당히 한산하다. 그럼에도 아쿠네역은 히사츠오렌지 철도의 다른 역과 다른 점이 많다. 무인역이 대부분인 제3 섹터 철도에서 항상 상주하고 있는 직원이 있는 역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리고 아무리 JR 시설을 그대로 이관받았다고 하더라도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시설을 줄여나가는 역도 많다. 하지만 아쿠네역은 상주 직원이 있는 유인역이며 역사 시설도 리뉴얼했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규모도 열차 내에서 바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제법 큰 편이다.
앞서 JR 규슈의 지도 상에서, 노선만 표기되어 있었던 히사츠오렌지 철도 구간 가운데 유일하게 역명이 표기된 역도 바로 아쿠네역이다. 비록 신칸센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아쿠네역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교통수단임은 분명했다.
제3 섹터 철도로 이관되지 않은 가고시마 본선이라고 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규슈의 중심인 후쿠오카 현을 벗어나기 무섭게 가고시마 본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산요 본선처럼 열차 빈도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물론 2량 편성 열차는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간간이 4량 편성 열차도 운행하고 있지만, 그것도 가고시마 현의 일부 열차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나마 JR 소속의 구간은 조금 나은 편이다. 히사츠오렌지 철도로 이관된 구간은 거의 대부분 1량 편성으로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그것도 JR 보다 더 낮은 빈도로 운행하고 있어서 열차 운행 총량으로 따지면 그 빈도가 훨씬 낮아질 것이다. 이 구간은 홋카이도의 도난이사리비 철도와 마찬가지로 1량 편성이어서 전기 설비를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간간이 2량 편성의 복합 열차가 다니고는 있지만, 그것도 정말 극히 일부 시간대에 한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차도 가득 채워서 운행하는 시간도 하루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다.
가고시마 본선은 규슈의 간선 철도답게 시원하게 쭉 뻗어있는 선로가 일품이다. 그것은 주변에 마을이 있으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곳을 달리는 열차는 정말 원 없이 달리고 있다. 워낙 엔진 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히사츠오렌지 철도 구간은 규슈 서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구간이 있어서 시골 철도 못지않게 훌륭한 경치를 볼 기회도 있다. 특히 대부분 선로가 복선으로 이어진 가고시마 본선 구간 가운데 몇 안 되는 단선 구간이어서 전기 설비만 없다면 한적한 시골의 지선 철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직선으로만 뻗어있는 철도에서 이런 반전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구경거리다.
도호쿠 본선의 열차와 마찬가지로 가고시마 본선과 히사츠오렌지 철도는 이제 더 이상 간선 철도의 기능을 한다기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통근 노선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특정 시간 대에 유독 승객이 많아진다. 항상 승객이 많을 때는 느낄 수 없었지만, 승객 수가 급감한 후에 마주한 이 장면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앞으로 나가사키 방면으로 또 하나의 신칸센이 개통될 예정인데 지금의 가고시마 본선처럼 나가사키 본선 역시 제3 섹터 철도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곳으로는 열차 빈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사와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칸센이라는 새로운 교통의 탄생이 과연 지방 중소도시의 교통수단 발전에 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축시킨다는 사실은 이때까지 살펴본 신칸센을 봐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무조건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도 분명 잘못되었다. 새로운 것도 항상 기존의 시설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이치와도 같아서 사람이 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통수단에도 적용이 가능함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이 점을 참고해서 우리나라 철도도 너무 고속철도 위주의 철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열차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