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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Mar 16. 2020

산요 신칸센 개통이 바꾼 철도노선

산요 본선의 열차는 어디로 갔을까?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를 잇는 일본 신칸센의 두 번째 노선인 산요 신칸센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이북으로 연결되는 도호쿠 신칸센에 비해 먼저 개통한 노선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신칸센이자,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많은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도카이도 신칸센과 직접 연결이 가능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산요 신칸센도 개통한 지 거의 45년이 다 되어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래서 지금의 철도 모습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지도 오래다. 하지만 신칸센이 아닌, 신칸센과 나란히 이어져있는 동일한 이름의 재래선은 아직도 5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변함없이 많은 열차들이 다니는 번화한 구간. 신칸센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사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신칸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도호쿠 신칸센이나 홋카이도 신칸센과 같이 제3 섹터 철도로 이관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산요 신칸센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요 본선은 여전히 JR 소속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산요 본선은 오사카 지역을 넘어가면 본선이라는 말 대신 지선 철도처럼 산요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보였다. 물론 열차 빈도는 많이 낮아진 상태며, 특급열차도 보기 어려운 구간이 특급열차를 볼 수 있는 구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산요선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신야마구치역. 노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특급열차를 볼 수 없다.


  일부 노조미호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신야마구치역에는 여전히 많은 재래선 열차가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 역에서 산요 본선은 만날 수 없다. 대신 산요선이라는 이름으로 노선이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산요 본선이 이렇게 산요선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간선 철도에서 지선 철도 급으로 등급이 낮아진 산요 본선은 노선 이름뿐만 아니라 열차 운행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산요 본선을 운행하는 특급열차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특급열차가 없다 보니, 산요 본선의 시간표는 이제 단색 일색의 단조로운 시간표가 되어버렸다. 보통열차도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볼 수 있는 시골 철도보다는 낫지만 한때 본선이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빈 공간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노조미호 정차와 함께 역 이름이 바뀐 신야마구치역.


  산요 신칸센이 개통하면서 역 이름이 바뀐 신야마구치역. 정확하게 말하면 노조미호가 정차하기 시작하면서 신야마구치역이라는 이름이 함께 등장했다. 원래 이 역의 이름은 오고리(小郡)역으로, 오고리 마을의 현관을 담당하는 역이다. 그렇게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오고리역으로 불렸던 지금의 신야마구치역이 이 이름을 갖게 된지는 불과 17년 남짓.

  산요 신칸센이 개통했을 때도 그대로 이름을 유지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신칸센 중 가장 높은 등급의 노조미호의 정차가 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노조미호가 정차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신야마구치역이지만, 이 역을 통틀어서 특급열차는 산요 본선이 아니라 야마구치현을 가로지르는 야마구치선의 슈퍼 오키호 뿐이다.


특급열차가 당연히 있을 것 같은 히로시마역도 특급열차는 없다.


  더 놀라운 것은 노조미호를 비롯해 모든 신칸센이 빠짐없이 정차하는 것은 물론, 상당히 많은 노선이 뒤엉켜서 상당히 복잡한 히로시마역도 특급열차가 없다. 승강장만 해도 10개가 넘는 큰 역인 히로시마역에 특급열차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승객이 얼마나 될까?

  이제 히로시마역은 보통열차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쾌속열차가 전부인 역으로 바뀌었다. 열차는 많지만 이 열차들의 편성을 보면 대부분 4량을 넘지 않는다. 신칸센의 개통과 함께 재래선의 수요가 얼마나 급감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한때 간선 철도였던 산요 본선. 그 흔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간선 철도로 이름을 날렸을 산요 본선. 그 흔적은 신칸센이 개통한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비슷한 폭의 도로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다니는 반면, 산요 본선은 열차가 드문드문 다녀서 휑하다. 일본에서 철도는 도로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교통량을 자랑할 정도로 역할이 컸지만, 신칸센 개통의 직격탄을 맞은 재래선은 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채 흔적만 남긴 샘이다.


그러나 바뀐 것이 있다면 짧아진 열차 편성이 아닐까?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는 산요 본선. 이곳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눈에 띌 정도로 짧아진 열차다. 운행 구간에 따라 열차 모양은 다르지만 2량 편성이 주를 이루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쩌다 4량 편성 열차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통근 시간대를 비롯해서 아주 일부 시간 대에 한해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산요 본선도 오사카 고베를 끼고 있는 대도시권이 아니면 열차가 수시로 들어와서 북적거리는 승강장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끝이 안 보이는 승강장이 말해주는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


  산요 본선의 역은 마치 신칸센 승강장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긴 승강장으로 무장하고 있다. 열차가 승강장 끝에서 끝까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치 하나의 역을 건너뛴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에는 이렇게 긴 승강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긴 장대 열차가 다녔음을 고려해본다면, 지금의 2량 편성 열차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진다.


바다를 끼고 가는 산요 본선. 신칸센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렇게 신칸센에 못지않은 거대한 시설만 있는 것 같은 산요 본선이지만 바다를 끼고 움직이는 낭만적인 구간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서부지역의 주요 도시들이 끼고 있는 세토내해는 산요 지역과 시코쿠 지역에 둘러싸인 바다로, 섬이 상당히 많다. 이 섬을 차창 너머로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것조차 느끼기 어렵다. 그만큼 재래선은 터널 일색의 신칸센과 달리 사색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신칸센 개통으로 복층 역이 된 후쿠야마역.


    신칸센으로 인해 많은 승객을 놓친 재래선이지만, 신칸센과 공생하려는 역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간간이 노조미호도 정차하는 후쿠야마역이다. 이 역 역시 특급열차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승강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재래선 승강장에 있으면 마치 지하철 승강장을 연상하게 한다.


위쪽 승강장은 신칸센이, 아래쪽 승강장은 재래선이 사용 중이다.


  재래선 승강장 위로 신칸센 승강장이 자리하고 있는 특이한 후쿠야마역. 재래선의 측면 승강장은 밖이 보여서 지상역 같지만, 가운데 승강장은 위쪽이 막혀 있어서 다른 역에서 볼 수 있는 승강장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신칸센과 재래선이 서로 경쟁이 아닌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산요 본선에서 바라본 산요 신칸센. 신칸센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철도 교통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신칸센. 초창기 신칸센이라고 볼 수 있는 산요 신칸센도 이제 거의 반 세기의 세월을 보낸 철도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 곳곳에서 새로운 신칸센이 개통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새로운 교통수단임은 분명하다. 신칸센(新幹線)이라는 이름이 '새로운 간선 철도'가 아닌가. 하지만 새로운 간선 철도도 시간이 지나면 재래선처럼 온갖 풍파를 겪게 되고, 결국 낡아진다.

  산요 신칸센은 신칸센도 결국 똑같은 철도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신칸센을 대체하는 새로운 철도 교통수단이 나오면 그때는 자신이 재래선의 지형을 바꾼 것처럼, 신칸센도 바뀌게 될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생명체를 보듯, 철도도 그렇게 세월을 머금는 생명체와 같은 모습을 보여서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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