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올림픽이 열리기 전, 도쿄와 나가노를 빠르게 잇기 위해 신칸센이 개통되었다. 그렇게 나가노역까지 운행하기 시작한 신칸센이 서쪽으로 더 이어지는데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가노까지 개통했을 때는 나가노 신칸센이라 불렸던 이 노선은 이제 가나자와역까지 연장되었고, 노선명 역시 호쿠리쿠 신칸센으로 바꿨다.
호쿠리쿠 신칸센이라는 이름으로 재개통한 이 구간은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홋카이도 신칸센, 규슈 신칸센, 도호쿠 신칸센 연장 구간과 달리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노선이 생기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제3 섹터 철도만 4개에 달하고, 나가노 신칸센이라는 이름으로 운행할 때 다니던 열차는 이제 새로운 열차에 자리를 내주고 거의 자취를 감췄다.
호쿠리쿠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신칸센이라고 하면 지역에 상관없이 노선별로 하나의 회사가 관할했었다. 그래서 같은 도쿄역이라고 해도 재래선과 같은 관할인 JR동일본 소속의 역도 있고, JR도카이 소속의 역도 승강장 한 켠에서 볼 수 있으며, 규슈 지역임에도 산요 신칸센의 일원이었던 고쿠라, 하카타역은 JR서일본 소속인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호쿠리쿠 신칸센은 JR동일본과 JR서일본이 공동으로 운행하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철도 운행이기도 하다.
JR동일본 노선도에서 볼 수 있는 호쿠리쿠 신칸센과 주변 노선도.
그래서 호쿠리쿠 신칸센은 JR동일본은 물론, JR서일본 노선도에도 확인할 수 있다. JR동일본 노선도를 보면 도호쿠 신칸센과 마찬가지로 제3 섹터 철도로 이관한 기존 철도 노선은 별도 표기가 없다. 그래서 죠에츠묘코역의 경우 붕 뜬 역처럼 보인다. 이토이가와역으로 이어지는 오이토선은 JR동일본과 JR서일본의 경계를 나타낸 표기도 볼 수 있었다.
JR서일본 노선도에서 볼 수 있는 호쿠리쿠 신칸센과 주변 노선도.
반면 JR서일본 노선도에서는 제3 섹터 철도로 이관된 노선도 대략적으로 표기해놓았다. 거기에는 회색으로 표기된 4개의 제3 섹터 철도를 볼 수 있다. 이관된 대부분 철도는 호쿠리쿠 본선으로, (도호쿠 본선이 그랬던 것처럼) 현이 바뀔 때마다 회사도 바뀌기 때문에 회사가 많아졌다.
호쿠리쿠 신칸센은 현재 종착역인 가나자와역 서쪽으로 계속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제3 섹터 철도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호쿠리쿠 본선의 연장은 짧아질 예정이다. 새로 생기는 것이 있다면 또 사라지는 것이 있기 마련. 철도 역시 사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신칸센 개통이 바꾼 티켓 보관함 디자인.
호쿠리쿠 신칸센의 개통은 다방면에 걸쳐서 변화를 불러왔는데, 그 첫 번째는 호쿠리쿠 본선의 공중분해였고, 그다음은 열차의 대대적인 변화였다. 일본은 아직까지 종이로 된 열차 티켓 발행이 훨씬 높아서 그 티켓을 보관하기 위한 티켓 보관함을 역 창구마다 비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 티켓 보관함은 단순히 티켓을 보관하라고 만들었다기보다 해당 지역의 철도 교통 및 시설에 대한 홍보까지 덧붙이고 있었다.
JR서일본 가나자와 지사에서 발행하는 티켓 보관함의 경우, 호쿠리쿠 신칸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에는 이곳을 다니던 특급열차가 메인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칸센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아직 신칸센이 개통하지 않은 가나자와역 서쪽에서 운행 중인 선더버드호가 신칸센과 나란히 기존 특급열차의 빈자리를 채웠다.
호쿠리쿠 신칸센 개통과 함께 운행을 멈춘 호쿠에츠호(좌)와 신칸센에 이름을 양도한 하쿠타카호(우).
호쿠리쿠 신칸센으로 인해 노선 자체가 폐지된 호쿠에츠호. 열차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호쿠에츠호는 지금 호쿠리쿠 신칸센처럼 JR동일본과 JR서일본 두 회사가 운영하는 구간을 넘나들던 열차였다. 그리고 이름은 남아있지만 특급열차가 아닌 신칸센에서 볼 수 있는 하쿠타카호. 이처럼 특급열차의 이름이라도 새로 개통하는 신칸센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열차 이름도 있다.
특급열차 이름을 계승한 하쿠타카호.
나가노역 이후 새롭게 개통한 구간에서는 하쿠타카호만 볼 수 있는 역이 대부분이다. 가장 높은 등급의 카가야키호는 나가노역을 지나면 도야마역과 가나자와역만 정차하고, 츠루기호는 도야마역, 신다카오카역, 가나자와역 등 딱 세 역만 정차하는 셔틀형 열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역에는 중간 등급의 하쿠타카호만 정차한다. 특급열차에서는 더 이상 하쿠타카호를 볼 수 없지만 이제 신칸센에서 이 이름을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하쿠타카호라는 이름이 더 멀리까지 퍼진 것은 분명하다. 고속철도로 인해 기존 열차 이름이 사라지는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현재 운행 중인 선더버드호(좌)와 호쿠리쿠 신칸센 E/W7계(우).
한편, 노선이 축소되긴 했지만 호쿠리쿠 본선 구간을 다니고 있는 선더버드호. 그리고 이 열차들의 운행을 바꾼 신칸센 E/W7계 열차. 현재(2020년 기준)까지 등장한 신칸센 가운데 가장 최신형 열차다. JR동일본 소속 열차면 E7계, JR서일본 소속 열차면 W7계라는 이름이 붙는다. 열차는 홋카이도 신칸센과 달리 외관상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 열차는 JR동일본 소속 열차로는 유일하게 자동으로 병렬연결이 불가능한데 한 편성이 12량이어서 따로 병렬연결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JR서일본 소속 중 도카이도 신칸센과 직통 운행하는 산요 신칸센 열차는 16량 편성도 있으며, E/W7계처럼 병렬연결을 할 수 없는 형태다.)
나가노역 신칸센 승강장, 나가노 신칸센일 때(좌)와 호쿠리쿠 신칸센일 때(우).
호쿠리쿠 신칸센 이전의 나가노역은 시종착역으로 활용된 역이었다. 그 흔적은 당시 다녔던 아사마호가 여전히 나가노역을 시종착역으로 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운행하고 있는 열차다. 나가노 신칸센으로 운행하던 당시에는 (지금도 간간이 아사마호로 활용되고는 있지만 거의 보기 어려운) E2계 열차가 이곳을 누볐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E7계 열차로 바뀐 상황. 그리고 아사마호는 거의 모든 역을 정차하는 완행열차 수준으로 등급이 하향 조정되었다.
JR동일본과 JR서일본의 경계역 역할을 했던 나오에츠역(좌)과 현재 경계역 역할을 하는 죠에츠묘코역(우).
신칸센의 개통과 함께 JR동일본과 JR서일본의 경계가 되는 역도 바뀌게 되었다. 특급열차들의 경계역이었던 나오에츠역은 역 명판의 인근역 표기에 두 회사의 색이 다 표기되어 있다. 호쿠리쿠 신칸센과 다른 점이 있다면, JR동일본 소속의 노선은 호쿠리쿠 본선이 아니라 신에츠 본선이었다. 그러니까 호쿠리쿠 신칸센이 개통하기 전 호쿠리쿠 본선은 나오에츠역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랬던 호쿠리쿠 본선은 신칸센이 이름을 가져가면서 도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 회사의 새로운 경계역이 탄생했는데, 그 역은 나오에츠역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한 죠에츠묘코역이다. 죠에츠묘코역의 역 명판은 나오에츠역과 달리 JR동일본 역명판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이렇게 만든 이유는 다른 지역의 신칸센 역 명판과의 통일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회사 경계에 있는 역(신오사카역, 하카타역, 신아오모리역)의 역 명판.
직결 운행을 통해 서로 다른 회사의 경계역이 된 역은 신오사카역을 시작으로 하카타역, 신아오모리역 등이 있다. 그 역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역 명판인데, 두 회사의 역 명판 디자인이 모두 반영된 것이 아니라 먼저 만들어진 노선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 명판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죠에츠묘코역은 먼저 운행 중이었던 JR동일본의 역 명판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다.
같은 호쿠리쿠 신칸센임에도 회사가 바뀌면서 역 명판이 달라진다.
죠에츠묘코역을 경계로 등장하는 인근 역들. 이야마역은 JR동일본 소속이어서 죠에츠묘코역과 동일한 디자인의 역 명판을 볼 수 있는 반면, JR서일본 소속의 이토이가와역은 다른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열차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운행하고 있지만,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처럼 뚜렷한 경계를 설정해놓고 있었다.
IR이시카와 철도 가나자와역 역 명판과 개찰구.
아이노카제도야마 철도 도야마역 역 명판과 개찰구.
에치고토키메키 철도 죠에츠묘코역 역 명판과 개찰구.
시나노 철도 나가노역 역 명판과 개찰구.
호쿠리쿠 본선이 제3 섹터 철도로 이관되면서 생긴 회사는 다음과 같다. 주요 역에서 담아본 역 명판과 개찰구의 모습. JR이 사용했던 역 명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회사도 있고, 새롭게 자체 디자인한 역 명판을 사용하는 회사도 있었다. JR 역 명판과 같은 디자인을 사용하는 회사는 개찰구도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직결 운행도 가능할 것 같았다. 새로운 역 명판을 사용하는 회사는 JR과 다른 승강장을 사용 중이다.
여기서 이관된 철도는 JR동일본의 신에츠 본선과 JR서일본의 호쿠리쿠 본선이다. 공교롭게도 두 노선을 모두 이관받은 에치고토키메키 철도는 JR 두 노선의 경계역인 죠에츠묘코역을 지난다. JR동일본 소속의 나가노역은 신에츠 본선 구간인 시나노 철도를, JR서일본 소속의 가나자와역과 도야마역은 각각 호쿠리쿠 본선을 이관받은 이시카와 철도와 아이노카제도야마 철도가 지나가고 있다.
신칸센 역 가운데 가장 이름이 긴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
호쿠리쿠 신칸센에는 신칸센 역 가운데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역도 있다. 한자만 7글자에 달하는 역으로, 이토이가와역 다음 역인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이 그 주인공이다. 히라가나만 따져보면 양 옆의 역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다.
이렇게 눈에 띄는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은 사실 하쿠타카호만 정차하는 역이다. 이 역에서 볼 수 있는 JR 재래선역은 없다. 아마도 이렇게 단독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눈에 띄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칸센 최초로 2개 회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호쿠리쿠 신칸센. 나가노 구간이 먼저 개통한 후 근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서쪽 구간이 개통할 정도로 다른 노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호쿠리쿠 신칸센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더 서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