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그렇다.
늘 가까이 다가왔다가, 괜히 토라져 멀어지는 애인 같다.
오늘 바람이 얼마나 날카롭게 불었는지
머리카락이 살아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따뜻할 줄 알았던 계절이
가끔 이렇게 차갑게 군다.
언젠가 봄날, 길에서 바람이
내 긴 머리카락을 통째로 뒤집어버린 적이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치며
순간 세상을 가려버렸다.
그날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과감하게 단발로 잘랐다.
그 한 번의 바람이
긴 머리를 거추장스럽게 느끼게 했고
결국 내 머리를 단발로 바꿔놓았다.
그 해 이후로 봄바람이 불면
그 순간이 내 머릿속에 다시 살아난다.
횡단보도 앞에서 시야가 가려졌던
그 우스운 장면이 말이다.
그래서 확실히 기억한다.
봄엔 바람이 많다는 것을.
단발을 결심했던 그날 이후
다시 머리를 길렀고
이젠 봄바람이 아무리 날 흔들어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절대.
그럼에도 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갑자기 차갑게 굴다가, 잠시도 눈치 보듯 다가왔다가
순간순간 나를 놀라게 하는 그 변덕스러움이
어쩌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때로는 설레게도 한다.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나는 웃고, 마음이 흔들리고,
다시금 설렘을 품는다.
봄은, 그렇게 매번 나를 시험하고
나를 안아주는 계절이 된다.
결국 봄은,
토라졌다가도 다시 다가오는
애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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