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에 시골로 이사를 와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벌써 네 번째 계절 겨울을 맞았다. 산책을 하며 우리는 길고양이들, 집강아지들 그리고 동네 분들과 얼굴을 트고 지내게 됐다.
산책하다 만난 할머니들은 “애가 넷이여? 다 내 자식이여?” 물으시고 동네에 애들 소리가 나서 참 좋다고, 우리 동네에 이사 와줘서 고맙다는 듣기에 민망하고도 황송한 인사를 하신다. 아이들이 보이자 거북이속도로 차를 몰고 오시던 아저씨들은 아이들 옆에 정차하시고 창문을 내린 뒤 홍삼 캔디를 손에 쥐어주신다. 멋쩍으신지 괜히 “엄마 말씀 잘 들어.”라는 감사한 말씀도 덧붙이신다. 가까운 이웃집 할아버지는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후다닥 튀어나오셔서 “애들 지나가면 주려고 사다놨어.” 하시면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도 자주 받지만 내가 좋아하는 농산물도 자주 받는다. 밭에서 바로 가지를 따주시기도 하고, 수확철에는 애기 많은 집이라며 고구마도 한 박스, 쌀도 한 포대씩 가져다주신다. 본인을 ‘산신령’이라고 소개하신,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기르신 할아버지께서는 “깻잎 먹고 싶으면 여서 따다 먹어요.”라는, 내심 기다렸던 말을 해주셔서 감사히 싱싱한 깻잎을 따다먹기도 했다.
그러다 겨울이 되니 다른 농산물 선물은 뜸해졌는데 꾸준히, 조금 부담스럽게 자주 들어오는 선물이 있으니 바로 ‘계란’이다. 집에서 가까운 마트라고는 ‘농약마트’ 뿐이고, 계란을 살 수 있는 매장은 걸어서 30분은 가야하니 계란은 이제 귀한 먹거리가 된 셈이다.
남편 혼자 장을 보러 간 어느 날, 마침 계란이 할인을 해서 30구짜리 2판을 사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 가까운 곳에 사시는 아가씨 시어머님께서 애들 먹으라고 백김치와 구운 달걀 30알을 가져다주셨다. 계란이 90알이 되서 좀 난감하긴 했지만 구운 달걀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짭쪼롬한 맛에 반했는지 애들이 매일 두 알씩 잘 먹었고, 덕분에 계란이 금방 60알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집 보일러에 기름을 넣었는데, 주유소에서 선물로 방사유정란 20개를 주셨다. 주유하면 보통 10알씩 주시는데 이 날은 초저녁에 오셔서 마지막으로 배달하는 집이라고 20알을 주셔서 계란이 총 110개가 되었다. 이 주유소 사장님은 ‘서민갑부’라는 TV프로그램에도 나오신 유명한 분이신데 주유소와 양계장을 함께 운영하고 계신다. 닭을 수 천 평의 초지에 풀어 키우고 유전자조작옥수수가 포함된 사료가 아닌, 곡물로 만든 사료와 직접 담가 토굴에서 발효한 발효액을 먹여 키우신다. 사먹으면 한 알에 ‘천 원’씩 이고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기다려서 받아야 하는 귀한 계란을 이렇게 척척 서비스로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기름을 새로 채워 넣긴 했으나 오래된 보일러가 말썽을 일으켜서 주유소 아저씨께서 수리공 할아버지를 소개해주셨다. 보일러실까지 수리하느라 며칠 걸린 오랜 공사를 마무리하시던 날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 닭이 낳은 거요.”라는 묘한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시크하게 내미신 것은 계란 30알과 생닭 한 마리였다. 누적 계란 140개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그 목소리에서 문득 프레드릭 베크만의 유명한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인 오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오베 할아버지에게 커피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아니라 여과기에다가 ‘손’으로 내려 마시는 게 당연하고, 집수리는 수리공이 아니라 집주인인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 보일러 할아버지에게도 시골 살면서 닭을 길러 계란을 받아먹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시아버님께서도 작년에 산 아래 집을 지으셨는데 닭은 당연히 키우시고, 종종 계란을 모아 가져다주신다. 시어머님께서는 봄마다 냉이, 쑥, 나물을 캐시고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워 모아 가루를 내셨다가 묵을 쑤어주신다. 나에게 계란, 나물, 묵은 마트에서 사다먹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부모님 세대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자연에서 직접 먹거리를 얻는 게 당연한 일 같아 보인다. 내 눈엔 산과 들에서 직접 먹거리를 거둬드리는 게 큰 ‘수고’로 보이는데 부모님들에겐 먹거리를 기르고, 따는 행위가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자연스러운 식생활의 연장이다.
도시에 살면서 계란을 선물 받은 적이 있던가. 선물을 받은 적도 선물한 적도 없다. 선물할 만한 물건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고, 선물 받았어도 떨떠름했을 것이다. 집 앞 마트에 가면 구할 수 있는 흔한 먹거리니까. 하지만 마트가 먼 시골에 이사 오니 누가 사다준 계란이든 직접 닭을 키워 받은 계란이든 그리 반갑다. 그 계란을 두고 우리 가족을 떠올려주셨다는 게 감사하고, 허물없이 소소한 음식도 나눌 수 있는 이웃 간의 ‘정’에 감동한다.
시골에서 첫 겨울을 나는 동안 계란은 마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우리 집에 왔다. 계란요리를 먹으며 아이들이 묻는다. “이건 누구네 계란이야?” 아이들은 계란이, 모든 먹거리가 자연에서 나서, 사람의 손을 타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금세 깨닫는다. 다가오는 봄에는 아이들의 두 손이 사고, 계산할 뿐 아니라 캐고, 다듬고, 나누는 야무진 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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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셋째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