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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Jun 01. 2023

책임자를 찾아라!

  2023.4.15. 이런 기사가 떴다.     

  '초등학생 방화셔터 끼임 사고' 행정실장 항소기각     

  

  해당 사건은 2019년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설업무 담당자의 방화셔터 수신기 오작동으로 셔터에 초등학생이 크게 다친 사고이다.      

  당시 시설업무 담당자(시설보수 용역업체)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학교 행정실장에게는 벌금 1,000만 원의 처분이 주어졌다. 행정실장은 시설관리 책임은 경상남도교육청과 교장에게 책임이 있고, 시설업무 담당자의 오작동이 주원인임을 주장하여 항소했으나 기각당했다. 

  교장은 경찰이 사고 책임을 물어 기소되었지만 행정실장이 소방 안전관리자로 선임되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예전의 기억이 났다.               

  각 학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화재와 식중독이다. 공교롭게도 그리 길지 않은 근무기간 동안 두 종류를 다 겪었었는데, 식중독 사건은 두 번을 겪었다.     


  첫 식중독 사고는 1n 년 전 발령받은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풋풋한 시보 시절.      

  여느 아침처럼 출근했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교감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께서 다급하게 교장실로 들어가고 곧이어 실장님도 교장실로 들어갔다. 연이어 영양사님이 교장실로 호출을 받아 들어갔다. 교장실과 행정실은 문 하나 사이여서 교장실의 소란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렇게 식중독 사고 첫날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복통과 설사로 등교하지 못한 아이들 파악과 수업 중에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로 보건실은 마비 상태가 되었다.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두 조퇴였기 때문에 흥분한 아이들은 너도나도 보건실로 달려갔서 증상을 말하고 조퇴를 했다. 일부 학생들은 행정실 앞에서 시위성으로 구토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너희가 만든 거 먹고 이렇게 되었다며 복도에서 소리를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수선한 와중에 교육청 급식 관련 부서에서 팩스로 계약 책임자, 조리 책임자 직급 및 급식 계약 내용을 적어서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급식 업체명과 연락처, 실장님 이름, 그리고 영양사님 이름을 적고 팩스 발송을 위해 보여드렸었는데 엉뚱한 이야기가 나왔다.                

 

 "OOO 주무관이 급식 입찰하고 계약했으니까 책임을 져야지."     


  조달청 입찰도 내가 했고 계약도 내가 했으니 책임자라는 이야기였다. 교장실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영양사님과 조리 종사원분들을 모아놓고 화내는 소리가 문을 넘어 들리고, 조퇴한 아이들은 아픈 아이들이 맞는지 신나서 복도와 운동장에서 떠들어대고, 실장님은 나를 앉혀두고 네가 책임자가 맞다고 계속 말하고 있고

  발령 2개월 차 가만히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 지역교육청 급식부서 사무관님이 담당자들과 학교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시달려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한 영양사님, 조리 종사원분들 그리고 나까지 오라를 받드는 죄인처럼 행정실 한쪽으로 줄줄이 서 있었다. 그때 담당 사무관님의 첫마디를 잊을 수 없다.               

 

 "사고는 이미 터졌으니 절차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원인이 조리 과정에서 나온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기다려봅시다."               

 

  그 말을 듣고 영양사님, 조리 종사원분들 다들 울음을 터트렸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 모두 급식실에서 잘못한 거라고 난리 치는 통에 죄인 된 기분으로 단 한 순간도 숨조차 편히 못 쉬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누구 하나 앞으로 나가서 해결하자는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 이후 학교는 식중독 처리 절차대로 진행되었다. 대체 급식이 준비되고, 관련 기관들이 와서 역학조사를 하고, 결과를 보내고, 상황을 점검했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자 아프다고 조퇴했던 애 중 다수는 조퇴를 위한 꾀병임이 밝혀졌다. 시간이 지나며 학교는 겉으로는 일상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식중독 사고의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급식 맛집이었던 학교는 메뉴의 단순화(실험적이거나 위험한 메뉴 배제), 안전을 위한 고온 조리를 선택했다. 음식 맛은 들쑥날쑥했고 예전처럼 안정화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이 사건으로 근무하시던 영양사님은 학교를 떠났고, 조리 종사원분들 중 세 명이 사직 의사를 밝히셨다. 더 이상 마음이 힘들어 근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한 학기는 마무리되고 총 네 명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약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식중독 사고를 맞이했다. 

    

  식중독 발생일은 9월 초 심지어 교장 선생님은 9월 1일 자로 우리 학교로 부임하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10년 전의 기억을 떠오르며 걱정에 휩싸였다.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파악도 채 안 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이들의 증세가 나오고, 다시 학교는 바빠지고. 영양교사와 조리 종사원분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고 힘들어하신 건 마찬가지였다. 급식 사고로 밀려드는 업무를 정신없이 처리하고 있는 영양교사에게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너무 죄지은 사람처럼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맡은 일을 해나가시라. 책임은 교장이 지는 거다."     


  나에게 직접 하는 말은 아니지만 감동했다. 이런 말을 하는 관리자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게 학교는 다시 조금씩 정상화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장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학교 전체에 생겼다.               


  공무원이 일을 많이 하면 남는 건 감사 지적사항뿐이라는 말이 있다. 너희가 하는 일은 당연히 하는 일이고 그 과정에 잘못된 건 결국 지적사항으로 남아돌아 온다는 이야기.     

  담당자 곧 실무자들은 생각한다. 성과는 결국 대표의 이름으로 나가고 책임은 담당자에 묻고 질책한다면 결국 누가 적극적으로 일을 할까? 안 하면 아무런 일이 생기지도 않을 텐데 굳이 일을 해야 하나? 책임자는 내 몸 하나 지키자고 담당자를 앞으로 내몰아 버린다면 그 조직은 미래가 있을까?     

  서두에 말한 행정실장은 그저 몇 시간의 소방 안전관리 교육을 받고 담당자로 지정이 되었을 뿐인데, 학교의 대표 책임자가 돼버린 상황이다.      

  진짜 책임자는 누구일까? 좋은 것만 대표라는 이름으로 나가고, 민원 상황이나 갈등 상황에서 책임자라는 이름은 담당자에게 미뤄진다면 대표의 의미가 맞을까? 다시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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