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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Jun 15. 2023

누구세욧!!!

퍼프소매와 노란 치마

  교육행정직으로 일하면서 첫 발령부터 지금 현재까지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 근무지의 차석으로 근무를 해왔다. 딱 한 번 큰 아이를 낳고 복직을 했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학교 실장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물론 겉보기에 한적하고 속은 어마어마한 일들이 펼쳐졌던 학교였다.

  보통의 초등학교처럼 그 학교에도 병설유치원 있었는데, 시골학교다 보니  한학급이 편성이 되어있었다. 행정실 옆 유치원 교실 하나에서 아이들이 쫑알쫑알 노래도 부르고, 까르르 거리며 웃고. 업무를 하다 가끔씩 들리는 소리는 때때로 여유를 가지는 순간이자 어린이집에 있을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5월인지 6월인지 햇살이 조금 따가운 어느 날 잠깐 시설을 둘러보고 사무실 자리에 앉는데 창가에 생경한 풍경이 보였다.

  "주무관님, 저게 뭐예요?"

  행정실 창문 너머 유치원 모래놀이터에 노란색 치마와 퍼프소매가 강조된 백설공주옷을 입은 남자가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덩치가 있어서 깡충해진 드레스 치마 사이로 굵은 장딴지와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 아이들은 연신 그 남자에게 안기려고 하고 남자의 치마를 잡고 뛰고 있었다.

  '변태 아냐?..........'

  마음이 다급해졌다.

  "주무관님, 시설주무관님 좀 유치원 놀이터로 오시라고 하세요!!! 저 남자 이상해 보여요!"

  말을 마치고 바로 뒤돌아서 행정실을 박차고 중앙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누구세요!!! 아이들한테서 떨어지세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뛰어갈수록 행정실에서 바라볼 때 보다 남자의 덩치는 컸고 온몸은 근육질이었다.

 '어머, 나 같은 사람은 한 손이면 제압이겠구나. 아니 한 손이 뭐야 한 손가락으로 가능하겠네. 어쩌자고 혼자 뛰어왔지. 남자 주무관님 오시면 같이 내려갈걸 그랬나? '

  두려웠지만 얼른 뛰어서 그 남자 앞으로 갔다. 그런데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고, 아이들은 신난 표정이었다.

  그때, 유치원선생님께서 뛰어오셨다.

  "실장님! 방과 후 체육 선생님이세요. 오늘 애기들 재미있게 해 주신다고 특별히 공주의상을 입으셨어요."

  "어. 아...... 어머 죄송해요!"

  방과 후 체육시간에도 체육활동뿐만 아니라 방송댄스도 가르쳐 주시고, 체육기구도 다양하게 준비하시던 분이셨는데, 오늘은 특별히 공주 드레스를 입고 오셨던 것. 잠깐의 민망한 상황을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행정실로 돌아오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요즘은 대부분의 물건을 인터넷 배송으로 구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인이 학교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교문을 통과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 예전처럼 학교에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들어와서는 각종 물건을 강매하는 경우도 많이 사라졌다. 강매 중 젤 힘들었던 건 장애인단체를 빙자한 목장갑, 휴지 파는 사람들이었다. 여자가 대부분인 행정실에서 은근한 협박조로 말을 하며 물건을 살 때까지 나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사면 계속 찾아오기 때문에 곤혹이었다. 또한, 신용카드 발급이 조건 없이 쉬웠던 시절 은행가 근처 학교는 신입은행원의 카드 영업장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와 경직된 얼굴로 카드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면 취업난에 얼마나 힘들게 들어갔을 텐데 하는 맘에 하나, 둘씩 만들어주곤 했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시중 대부분의 카드가 다 있어서 만들어 주고 싶어도 만들어 줄 수가 없었다.



  

  학교 교문을 잠그고 쪽문도 잠그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던 어린 시절의 학교와 달리 요즘의 학교는 누구든지 접근하기 쉬운 학교로 바뀌는 분위기다.

 

  얼마 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일과시간 전 새벽이었지만 그 충격은 매우 크다. 간간히 뉴스를 통해서 전해오는 학교운동장에서 벌어진 폭력사건들 절도 사건들을 듣고 있으면

   두렵다.

  학교의 특성과 내부구조를 아는 사람들이 침입을 했을 때, 상대적으로 외부의 침입에 취약한 미성년자인 아이들과 여성이 대부분인 학교를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 현재 있을까?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면 보통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학교에 외부인을 차단할만한 출입장치를 마련했는가? 담당자는 누구인가? 계획서는 마련되어 있는가? 교육을 실시했는가? 시기는 적절한가? 낯선 이를 철저히 확인했는가? 마지막으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정도의 순서이지 않을까.

  익숙한 이 생각의 고리를 살펴보면,  모든 내용은 학교 내의 사람들이 얼마나 방어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외부 침입자를 향한 시선은 없다. 그저 얼마나 대비를 잘해왔는지를 문서작업으로 일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문서로 남기는 상황에 집착하다 보면 핵심은 흐려진다.


  과연 학교라는 공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가.

  학교는 학교 안에 존재하는 모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제일 중요한 사실이다. 일과가 시작하자마자 학교에는 학생과 교직원 이외는 들어오지 못하는 곳. 특히나 아이들 보호가 제일 우선시되어야 한다.

  설령 학부모라 할지라도 학부모가 방문하는 특정한 기간이 아니면 아예 학교로 오지 않는 것. 그리고 학교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철저히 가해자에게 엄벌을 가하도록 하는 것. 설령 직접적 피해자가 없고 학교가 범죄의 장소가 될 때에도 각종 사연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없이 처벌하는 것. 그래서 학교라는 특수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게 말이다.


  학교시설개방 요구가 거세다.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실내외 체육시설, 놀이시설, 수영장, 도서관 등 각종 문화시설은 새로 짓기에는 돈이 들고 합의할 사항도 많다. 선거철에만 반짝 동네에 새로운 수영장이 새워질 거라는 둥. 도서관이 생길 거라는 둥. 말은 많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렵고 안 할 수는 없고, 애매한 화살은 학교를 가리킨다. 학교는 지극히 교육을 위한 공간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시설이 되기 전까지만 잠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다려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도 알고 있다. 언제까지 학교가 문을 닫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러나 현재의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조건 개방에 대한 압박을 주는 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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