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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Jun 29. 2023

늙지 않는 사람들

  90년대 말 '팟 팟 팟' 3단 점프 컷으로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등장 장면을 보여준 영화 '여고괴담'.

  영화 개봉 당시의 세대가 아니라도 각종 매체에서 여러 번 오마주 되어 그 장면만은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한이 맺힌 여고생이 죽어서 귀신이 되어 학교를 맴돌며 나이를 먹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학교에 다니는 이야기. 희생양이 되는 선생님은 졸업사진 속에 반복되는 아이를 찾아내고 그 아이가 사람이 아님을 확신한다.  영화 여고괴담 속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귀신임을 알아차린 핵심 키워드는 반복되는 졸업앨범 사진.   

  



  과거의 졸업앨범 촬영 날 학생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은 교복이 전부였다. 모두 같은 교복을 착용하고, 두발규정 탓에 비슷한 머리모양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개인 사진이나 모둠 사진 할 것 없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들이었다.

  요즘 졸업앨범은 어떨까?

  앨범을 찍는 날 학교는 축제의 분위기다. 졸업앨범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모 고등학교의 아이들은 1학년 때부터 어떤 분장을 할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그 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한 해 있었던 모든 이슈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졸업앨범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졸업앨범으로 유명한 학교가 아니라도 학교마다 졸업앨범 찍는 기간 아이들은 분주하다. 그나마 초등학교 졸업앨범은 좀 얌전하지만 중, 고등학교는 각 개별사진, 모둠 사진, 야외활동 사진 등에서 교복을 포함하여 다양한 개인 복장으로 개성을 뽐낸다. 단 한 컷을 위해 의상을 대여하기도 하고 사는 등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날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평소보다 힘을 준 복장으로 오기도 한다. 기록은 영원하니까.

  

  또 하나 바뀐 분위기는 담임선생님이나 학년 전담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선생님의 사진은 앨범에서 빼자는 이야기다. 개인정보 민감성이 높아진 시대 상황과 선생님들의 개인정보유출 및 사진 재배포에 따른 문제가 제기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졸업앨범 마지막 장에 개인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있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고,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다시 처음의 여고괴담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아직도 학교 졸업앨범에서 늙지않고 영원히 멈춰있는 사람들.

  누굴까?

  정답은 교육행정직과 공무직

  졸업앨범을 받는 학생, 학부모가 유심히 볼 일이 없고 사진을 찍는 당사자도 앨범에 대한 애정이 없다. 사실 매년 반복되는 사진 촬영은 번거롭다. 일하는 중간 학교에 마련된 장소를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학교 앨범으로 영원히 남다 보니 아무런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솔직히 귀찮다.

  아이들이 우리를 알까? 하는 생각은 고사하고, 원치 않지만 사진 찍으라니까 마지못해 찍은 것도 억울한데 업무 중간에 나가서 사진까지 찍는 건 번거롭다 보니 새로 안 찍는 것이다. 낯선 이들에게 배포되는 앨범에 현재의 자기 얼굴을 보여줄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단지 졸업앨범 교직원 페이지 중 가장 마지막 페이지! 

  그곳을 채우기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사진을 찍거나 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옮겨 다니던 학교에서 찍은 사진 중 맘에 드는 잘 나온 사진은 두고두고 가마솥 사골을 끓이듯 우리고 우려서 써먹는다. 매년 그 사진을 내다보니 앨범 속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근무한 한 학교에서 행정실 직원 연령대는 30, 40, 50대 다 있었지만, 사진상으로 우리는 모두 삼십 대였다.     

  하지만, 우리가 졸업앨범 속에 나의 얼굴을 빼달라고 말할 곳이 없다. 졸업앨범 준비위원회에는 포함이 안 되고, 졸업앨범 제작 안이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올라가면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하는데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위원의 자격도 없고(운영위원회는 교원 위원이지 교직원 위원은 없다) 그저 참관의 자격만 있다. 게다가 학생처럼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니 가타부타 말하기 애매한 위치이다.     

  

  옛날 졸업앨범은 같은 학교라는 소속감을 공고히 하고 지나간 학창 시절의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다. 또한 카메라나 사진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던 시절 친구들과 기념으로 남길만한 사진을 학교에서 만들어주던 과정의 하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개인 SNS를 통해 언제든 서로를 볼 수 있는 요즘은 사진과 앨범에 대한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모든 학교에서는 졸업앨범을 만들고 있다. 기념할만한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졸업앨범 교직원 사진이 스승에 대한 추억과 존경의 의미라면 우리에게도 한 페이지를 내어 주는 것은 정말 감사하다. 그러나 나의 존재를 굳이 알리지 않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졸업앨범에서 빠질 자유를 주기를 바란다. 혹 말을 안 해서 몰랐다면 이제 말해드린다. 한번 물어는 봐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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