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시즌이다.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이 미치기 직전에 방학이 시작되고, 엄마가 미치기 직전에 방학이 끝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기다렸던 방학이고, 또 누군가는 어서 끝나야 하는 방학.
방학은 학생과 선생님이 학교를 오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일하기는 편하다. 방학 일정에 잡아둔 굵직한 공사나 각종 재산정리나 물품 정리를 하기 좋은 시기기도 하고 연가를 써서 쉬기도 하고.
문득 학기 중 연가를 올렸더니 반대하던 관리자의 말이 생각이 난다.
"상대적 박탈감 느낄 수 있으니까 방학에 쉬세요."
요즘은 연가에 사유란이 빠져있지만, 장소와 사유를 적었던 시절이다. 당황스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비슷한 말로는
"별다른 중요한 일이 아닌 거 같은데 꼭 학기 중에 써야 하나요?" 도 있었다.
이런 말을 안 들어 봤다면 그 학교가 바른 학교이고, 들어봤다면 당신도 평범한 교육행정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마다 하는 이야기는 선생님들은 있는 연가도 못 쓰는데, 행정실에서 이렇게 연가를 쓰고 자리를 비우면 학기 중에 자리 못 비우는 사람들 맘이 어떻겠어요.
맞다.
선생님들의 연가 사유는 명시되어 있다. 흔한 직장인과 달리 학생수업 연계성의 특징 때문에 개인적 사유로 연가를 쓰기란 쉽지 않다.
선생님들이 자녀들의 입학, 졸업, 각종 발표회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아플 때도 수업 때문에 빠지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면 같은 부모로서 안타깝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하늘이 너무 파랗고 햇살이 눈에 부셔서
"하루 쉬겠습니다."
하려고 해도 당장 수업을 대신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없고, 수업을 하루 미룰 수도 없고 평범한 직장인 보다는 어려운 상황은 맞다.
그래도.
본인들이 못 쓰는 휴가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쓰지마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연가를 쓰지 못하고, 학기 중 연수를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학교에 메여있는데
너희만 가냐!
문제는 평교사가 아니라고 본다. 평교사를 위하는 척 핑계를 대는 관리자가 문제지.
대체 왜 못 가게 하는 것일까? 본인도 쉬고 싶은데 너만 쉬니까 배가 아파서?
아니면 왜곡된 사랑으로 출근한 교사들이 안타깝게 보여서?
간혹
"OO 씨 이번 방학에는 길게 넉넉하게 쉬다 오세요. "선심을 쓰듯 말하는 관리자도 있다.
포상 휴가라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개인 연가를 길게 붙여 쓰는 건데 말이다.
항상 습관성으로 "네,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 나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연가 사용 횟수가 늘어난 것도 관리자의 성과평가에 부서 내 연가 사용률이 포함되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전까지는 명절에 고향을 간다던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 여름휴가 시즌에 쉬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 오롯이 휴식을 위한 연가를 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던 분위기였다.
왜 쉬는 걸 싫어했을까?
급여 수준이 낮아서 연가보상비라도 받아서 채우려는 사람,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사무실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쩌면 연가를 쓰고 쉰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주어진 연가가 다 써서 연가보상비를 못 받으면 그걸 어떻게 다 썼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봤으니까.
하긴 예전 우리 아버지 시절 회사원들은 근무 시간에 사우나도 가고, 은행도 가고 개인 용무 보러 잠깐씩 회사 밖을 나가는 것을 눈감아 주는 문화였으니 지금처럼 연가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가진 연가를 당당히 쓰는 분위기지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간혹 노동조합 일을 하며 각종 휴가제도 같은 걸 제안하면 의외로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 제안 대상에 포함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비단 지방공무원, 교사, 공무직이라는 차이를 벗어나서 우리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기도 하다. 우리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왜 새로 만들어주냐, 그러면 누가 일하냐, 우리만 남아서 일하겠네 등등.
제발 시각을 넓히자.
다른 노동자의 권리가 하나둘 늘어야 내 권리도 늘어날 기회가 생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