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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ug 06. 2021

스키니진이 엄마 바지라고?

당신의 2007년을 기억하나요

 얼마 전 인스타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의 생각을 하나 보게 됐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스키니진'을 '엄마 바지'라고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제가 어릴 때는 힙합 바지가 유행했는데요. 바지통이 넓을수록 그리고 내려 입을수록 멋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교복 바지통을 늘려 입은 남학생들이 학생부 선생님들께 엄청 혼나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저때만 해도 체벌이 만연했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의 바짓단을 선생님이 찢는 일도 있었고, 머리가 긴 학생의 경우 머리카락을 잘리는 일도 있었죠. 


 대학생이 되어 동대문에 바지를 사러 갔더니 대부분의 청바지가 나팔바지였어요. 무릎까지는 좁을수록, 무릎 아랫부분은 넓을수록 멋쟁이 바지로 통용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위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몸에 밀착되는 형태의 바지가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그 바지의 이름이 바로 '스키니진'이었습니다. 유행하는 바지라고 해서 장만은 했지만 너무 딱 달라붙다 보니 불편해서 손이 잘 안 갔어요. 그러다가 소녀시대가 형형색색의 스키니진을 입고 나오면서 매대의 청바지는 모두 스키니진 스타일로 바뀌었고, 일반적인 젊은 여성이라면 스키니진을 입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나아갔죠. 다른 스타일의 바지는 팔지를 않아서, 입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제 청바지는 거의 다 스키니진입니다. 어린 시절의 힙합 바지니, 새내기 시절의 나팔 바지니, 기억하고 있다고는 해도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요. 초등학생들 입장에서는 30~40대 엄마들이 아직도 스키니진을 입으니까 순수하게 '엄마 바지'라는 표현을 사용했겠죠? 어느 날 출근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20대 분들은 살짝 부츠컷이나 배기바지를 입은 반면에, 저를 비롯한 30대 이상의 분들은 정말로 스키니진을 입고 있더라고요. 진짜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스타일을 바꿔볼까 싶어 통이 넓은 바지를 다시 입어봤는데 15년 넘게 스키니진에 익숙해진 눈과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더라고요.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옷이라 그런지 딱 달라붙어도 제일 편하고 그나마 가장 날씬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믿기지 않지만, 저도 빨강 노랑 스키니진이 있었답니다 ㅎㅎㅎ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07년 이후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는 여러분들 모두 지금보다 많이 젊으셨죠? 저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제 모습이, 저를 둘러싸고 있던 풍경이, 빛이 바랜 것도 아닌데 지금 보면 왜 그리 어색하고 촌스러운 느낌인 걸까요. 그 당시 저는 실제로 지금보다 훨씬 더 무슨 일에든 어설펐고 생각도 짧았고 실수투성이였어요. 그때 저는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20대에 들어서며 시작됐던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에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해지며 정말 많이 힘들었답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시절이 다른 어떤 때보다 빛나는 것 같고 어떻게든 다시 닿아 보고 싶은 거예요. 지나고 보니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그 자체로 얼마나 밝은 빛을 내는지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매 순간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고 수시로 오래 기억될 만한 사건들이 발생하며 시간이 흘러가는데요. 2007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주로 텔레비전 광고에서 만나볼 수 있는 김연아 선수가 엄청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며 전 국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대략 이 시기고요. 이승엽 선수의 활약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한국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까지 챙겨봐야 했어요.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을 마구 설레게 하기도 했죠.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보면 배우들의 모습이 정말 앳되더라고요. 당시 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 배우들처럼 앳되지 않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2007년의 김연아 선수, 그리고 커피 프린스 1호점

 

 지금도 곱창볶음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 맛을 처음 본 게 초등학교 때 동대문운동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였답니다. 친구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데려간 곳이 바로 거기였는데 당시 1~2인분이 3,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비싼 가격이었죠.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맛 본 곱창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멀리 가서 놀아보자 할 때는 어김없이 목적지가 '동대문운동장'이었어요. 그 동대문운동장이 언제 철거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바로 2007년 12월이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주위를 서성이며 옷을 사고 곱창을 먹었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어찌나 아쉽던지요. 혼자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또 적응이 돼서 별생각 없이 DDP를 돌아보지만 우리에겐 이런 기억도 있었어요.

 

추억 속 동대문운동장의 모습   @나무위키


 인생의 어느 순간을 '청춘'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도 청춘이고 싶습니다만, 20대 때만큼 새로운 것에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제가 달라지긴 달라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살아가는 데엔 확실히 편해졌지만 아주 가끔은, 쉽게 감격하고 고민하던 과거 제 모습이 그립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소설이 바로 <샤를로테의 고백>입니다. 소설을 쓰며 저는 이렇게나마 2007년을 다시 살아볼 수 있어 행복했는데요. 여러분도 청춘을 소환해보며 잠시나마 그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이러면 광고가 되는 거죠? 죄송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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