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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만난 헤르미온느

선교사 가정에서 머물렀던 모스크바

by 밍영잉

안녕 헤르미온느!


아크네 집에는 올해로 열 살이 된 헤르미온느가 산다.

그녀와 대화하는 건 꽤 재밌다.

(그녀라고 칭하기에 충분히 어른스럽다!)


온 가족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데,

그중에서도 헤르미온느는 단연 똑부러졌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안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무언갈 열심히 설명했다.


우리는 하루만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방에서 함께 네일샵 놀이도 하고

나와 함께 자고 싶다는 그녀의 요청에

흔쾌히 한 침대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마치 오래된 절친과 함께 보내는 시간 같았다.


대화할 때 제스쳐는 거의 어른



온 가족이 완벽하게 친절하고 화목했다.


아빠이자 나의 호스트 아크는 유머러스하고 살뜰했고,

그의 아내 안토니나는 차분하고 따뜻했다.

부부는 항상 손을 꼭 잡고 걸었고

아크가 안토니나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항상 빛이 났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그들의 건강 식탁
어김없이 차를 들이키는 나



저녁에 만화 축제에 간다는 아리나(헤르미온느)를 위해

속옷부터 악세사리까지 풀코디를 도왔다.

나는 귀여운 아리나에게 최대한 반짝이고

화려한 것을 코디해주려고 했다.

화룡점정으로 진주가 박힌 왕관을 머리에 얹자,

아리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너무 투머치 하지 않아?"


"그래…. 왕관은 빼자."




일요일 아침,

한인 교회로 향하는 나를 온 가족이 배웅해 주었다.

함께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탔고

나는 이 가족과 어우러져 모스크바 시내를 누볐다.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엔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의 맛,

메뉴는 닭볶음탕!

'아, 은혜롭다'


같은 식탁에 앉은 대부분의 청년들은

모스크바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었다.

성악, 피아노, 작곡 등 예술 계열을 전공한다고 했다.

나의 짧은 여행 이야기와 그들의 유학 생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떠나는 밤,

기차역에는 아리나가 아빠와 함께 배웅을 나왔다.

만화축제에서 에너지를 쏟고

아주 피곤한 행색이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고 싶다고

아빠를 졸라 기차역까지 왔다고 했다.


"고마워 짧지만 좋은 시간이었어!

건강하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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