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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당하는 순간이 찍힌 사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본격장르 Thriller

by 밍영잉

이 사진으로 말 할 것 같으면!

무려 '소매치기 당하는 중’인 사진이다.


카메라를 켜둔 채 주머니에 넣어둔 덕에

소매치기범이 내 휴대폰을 꺼내며

실수로 촬영 버튼을 눌렀고

그 찰나가 담기게 됐다.


피의구원사원으로 가는 길,

패딩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스르르륵 빠져나가는 느낌.

몸보다 먼저 튀어나간 것은

높고 강한 육두문자였다.


"아 식빵!"

소리와 동시에 돌아본 내 눈앞엔

내 샤우팅에 놀라

빼가던 핸드폰을 놓친

허리숙인 젊은이가 있었다.


둘은 동시에 떨어지는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는 먼저 떨어지는 핸드폰을 잡았고,

나는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대로 끝난 건가?’


하지만 그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내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며 말했다.

"Sorry"


그러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무슨 퍼포먼스였을까…

그 순간 화를 내며 그를 잡고 경찰서로 갔어야 했나,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한동안 친구와 그 절묘한 장면에 대해 곱씹었다.





상트는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다.

야심차게 예매한 미하일로브스키 극장

돈키호테 발레 공연.

숙소에서 극장까지는 도보 20분.

거리라 방심했다.


난 전자렌지에 고기를 두 번 데워먹으면 안됐었고,

필 받아 햇반을 꺼내왔으면 안 됐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비 오는 저녁에 빗길을 뛰어 극장에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겨우 잡아 탄 택시는 빗길에 좀처럼 나가질 않았고

구글 변역기로 기사 아저씨에게 자꾸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발레공연 시작해요… 빨리 부탁드려요.'


그러나 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 뿐이었다.

발레 티켓이 습기를 머금은 채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상상을 하는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이 솟구쳤다!

'아! 뭐 숙소로 돌아가서 영화나보지 뭐! 촤하하하!'


하지만 그때였다.

아저씨의 운전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현란한 클락션과 함께

비를 뚫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5분 전,

기적처럼 극장 앞에 도착했다.


"아저씨 스파시바!"


그리고 완벽한 밤.

3시간 짜리 발레 공연은 예상과는 다르게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친구와 함께 감탄에 감탄을 반복하며

커튼콜이 끝난 뒤 말했다.


"역시 발레는 러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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