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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움으로 제주를 더 제주답게



제주다움으로 제주를 더 제주답게



김형남(사단법인 공공브랜드진흥원장)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다. 행정적으로 특별함을 인정받고 있다. 이것을 나타내려 했음인지 제주의 도시브랜드는 ‘온리 제주(Only Jeju)’이다. 2008년부터 사용해 오다가 중간에 잠깐 ‘파인드 유어 제주(Find Your Jeju)’를 쓰기도 했으나 다시 ‘온리 제주’로 되돌아갔다.


‘온리 제주’하면 가슴에 와 닿는가? 제주만 유일한 존재는 아니고 사실상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일하다. 문제는 온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온리 자체만으로는 가치 공유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제주도의 고유한 정체성을 뜻하는 제주다움은 가끔씩 언급될 뿐 정의와 기준이 정해진 바 없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갈피를 못 잡고 방향성 없이 갑론을박이 난무한다. 


제주다움이란 무엇일까? 지금 제주는 제주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제주 정체성의 본질을 꿰뚫어 제주다움을 찾아내야 한다. 제주다움의 뿌리는 제주정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제주정신은 삼무정신을 비롯하여 조냥정신, 수눌음정신, 분짓정신, 돌담정신을 들 수 있다.


삼무정신은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이 없음을 뜻한다.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다. 또한 그만큼 부지런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주는 ‘삼다 삼무’의 섬으로 널리 회자된 제주의 상징이었다.


                 


                          

조냥정신은 절약이다. 비바람과 가뭄으로 인해 항상 아끼며 절약할 수밖에 없었다. ‘조냥허멍 살아사 혼다(아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조냥단지, 조냥허벅, 풀바른 구덕, 조각보, 감옷, 쉰다리, 촘항 등 조냥 정신이 깃든 물건이 이를 반증한다. 수눌음정신은 협동이다. 수눌음(手積)은 손을 눌다(쌓는다)는 뜻으로 여럿이 해야 할 큰 일이 있거나, 힘이 없는 집안에 일이 있을 때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상부상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짓정신은 자립이다. 분짓은 재산을 나누어주는 행위로 자식을 독립시킨다. 부모 역시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육지의 일반적 관행과는 반대다. 해녀정신은 분짓정신의 한 형태이며, 김만덕 정신은 수눌음 정신의 발로이다. 


이와 같은 제주정신이 된 근본 원천은 무엇일까? 옛 이름 탐라는 ‘깊고 먼 바다의 섬나라’라는 뜻이고 제주도(濟州島)는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란 뜻이다. 제주도는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검은 현무암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제주 땅은 한마디로 ‘돌밭’이다. 농사짓기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척박하고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정신문화로 1만8천 신들의 고향이 되었다. 마을 단위로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극복해 왔다. 제주정신의 울타리는 마을공동체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4.3사건은 제주정신을 근본에서 파괴했고 마을 공동체 회복의 과제를 남겨져 있다.


제주정신의 원천은 자연환경이고 제주도민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도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이다. 제주의 자연은 브랜드 정체성이자 본질이다. 가장 제주답게 하는 정체성,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제주의 상징인 도시브랜드 로고나 캐릭터, 인증마크를 보면 한라산, 제주바다, 돌하르방이 가장 대표적이다. 제주를 흔히 삼다도라고 한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뜻이다. 제주의 대표 상징 소재 중 가장 핵심적인 제주다움을 보여주는 ‘그것’은 무엇일까? 제주의 풍경에서 ‘그것’이 빠지면 제주다움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산과 바다, 바람과 여자? 그것은 다른 지역에도 있다. 가장 독특한 것이 화산용암으로 빚어진 검은 빛의 현무암 돌이다.


내가 지금 제주에 와 있구나를 느끼게 해 주고 제주다움을 확신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다른 지역의 풍경에 제주돌담만 더해도 제주라고 착각을 일으킨다. 반대로 제주 풍경에서 돌담을 빼면 어느 지역인지 특정하기 힘들 수 있다. ‘여기는 제주’라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은 돌담이다. 제주다움의 이미지는 제주의 모든 요소가 돌담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연출된다.


제주의 돌담은 서로 완만한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환해장성, 흑룡만리라는 말도 끝없이 이어진 돌담에서 생겨났다. 지형에 맞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제주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돌담은 바람을 배척하지 않는다. 숭숭 뚫리고 열린 틈새로 바람을 포용한다. 구불구불한 돌담은 엄청난 바람에도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는다.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해 두 차례나 제주를 방문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돌담을 제주만이 가진 세계적인 명물”이라고 평한 바 있으며 70년대 제주를 찾았던 미국의 <라이프>지 기자는 돌담에 대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보석과 같다”고 했다.


제주의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하나의 정신이고 문화이며 삶 자체다. 돌담은 장소와 쓰임새에 따라 밭담, 울담, 산담, 축담, 올렛담, 원담, 불턱 등으로 불린다. 지천으로 널리고 흔해 오히려 삶에 방해가 되는 자연물을 사람과 생활에 이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돌담은 쓸모 없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든 생활 속 지혜로움의 상징이다. 이러한 돌담정신이 제주 생활정신의 핵심이다.


마을길에서 집으로 이어 드는 길을 올레길이라고 하고, 거기에 쳐진 담을 올렛담이라 부른다. 돌담과 올레길의 특징은 제주다운 모습의 핵심이다. 돌담과 동행하여 길을 걷다 보면 곧 제주다움이 온 몸으로 스며들게 된다.


               




                  

제주를 제주답게 하는 핵심 가치는 청정과 공존이다. 제주다움을 담아 청정과 공존의 제주가치를 구현하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형의 가치를 명확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제주다움 브랜드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생산적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브랜드 정체성으로 ‘올레 제주’을 제시하고자 한다.


올레길은 집 마당에서 마을의 큰 길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이다. 길 하나 가지고 제주도의 정체성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올레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다는 본질을 내포한다. 길은 사람을 이어주고 만남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다. 올레는 돌담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조냥정신, 수눌음정신, 분짓정신을 모두 아우르며, 삼무정신에서 비롯된 평화의 섬이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돌담과 올레길, 그 속에 제주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담겨 있어 제주다움의 가치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올레로 제주를 제주답게 가꾸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는 제주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관광에 있다. 제주도민의 일자리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숙박업, 음식업, 도소매업, 운수업 등은 관광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관광객, 관광사업체, 제주도민은 관광산업의 핵심 관계자로 이해가 상충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제주는 관광 이전에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제주를 제주답게 매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관광객, 관광사업체, 제주도민 모두 피해를 입는다.


일본에 친절을 상징하는 국가브랜드인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歡待)정신이 있다면, 제주에는 올레정신이 있다. 올레는 제주 고유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이미 세계적으로 브랜드화되어 있는 말이다.


오모테나시가 나와 남이 분리된 채 염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올레정신은 나와 남이 친구가 되고 식구(食口)가 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인사말을 활용할 수 있다. ‘혼저 옵서예’는 어서 오세요를 뜻하는 제주어다. 특별한 정신적 의미가 내포된 말은 아니다. ‘올레 옵서예’, ‘올레 갑서예’라는 인사말을 통해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삼무정신, 조냥정신, 수눌음정신, 분짓정신, 무속정신, 돌담정신 등 제주정신의 뿌리는 이어짐과 연결, 공존이다. 뱃길로 섬과 육지의 연결, 올레길로 집과 마을의 연결, 신당으로 신과 인간의 연결, 자기 자신의 내면과의 연결을 소망한다.

                          

제주도민이라도 이주민은 ‘육지것’, ‘육지사람’으로 불린다. 원주민에게 이주민은 언제 떠날 지 모를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직 내 사람, 우리 사람으로 포함시키지 않는 거리감의 말투이다. 그 말의 감정적 뿌리는 이어짐에 대한 소망이고 떠남에 대한 근원적 슬픔이다. 올레정신으로 끈끈한 이어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올레는 경제산업적으로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제주다움과 올레정신을 상업적으로 적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가 이니스프리다. 이니스프리는 제주라는 컨셉을 팔아서 먹고 산다. 청정의 섬 제주 태고의 신비를 가득 담고 있는 희귀한 소재를 제품의 성분으로 활용한다.


제주의 정체성을 담아 제주를 제주답게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품격 있는 도시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제주다운 모습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제주다운 모습은 소박함, 곡선(원만함), 낮음, 비움(가벼움), 자연스러움이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버려야 한다.


‘올레 제주’라고 하는 브랜드정체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제주의 무수한 구슬을 올레라는 끈으로 꿰어 보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평화와 치유(힐링)의 섬, 생명과 자연의 제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대한민국 도시브랜드 실패는 선언에 그치고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이를 위해 계량화된 성과를 측정해서 지속적으로 피드업해야 한다. 제주의 올레지수는 몇 점인가? 경제산업의 올레지수는? 관광분야의 올레지수는? 문화예술의 올레지수는? 복지분야의 올레지수는? 올레지수를 세부 항목으로 구체화하면 고유성(Original), 활력(Live), 비움(Light), 친환경성(Ecology)으로 측정할 수 있다. 앞 글자를 따면 OLLE가 된다. 


마지막으로 제주가 항상 잊지 않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제주시가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할 최고의 찬사는 무엇일까? “짐을 덜어 몸과 마음이 가벼워. 힐링이 된 것 같아”이다. 이러한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제주의 모든 활동이 ‘올레’라는 하나의 방향타에 맞추어 일관성 있게 정렬되어야 한다. 


힐링하면 떠오르는 도시.

올레정신으로 기억되는 이름 -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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