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눈 한 번 깜짝하면 1년이 간다. 속 터질 정도로 시간이 느리던 10대와 20대 때 내 부모가 하던 말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며칠 전 한 스터디모임에서 올해를 정리하는 교류모임을 진행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올 한 해 내 삶을 풍요롭게 한 경험은 무엇인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사실, 늘 낭독이다. 나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낭독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낭독을 통해서였고, 내가 낭독을 전한 분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늘 감동과 감사다. 올해엔 수강생분들이 ‘지속 가능한 낭독’을 해나가는 모습에 무척 감격한 기억들이 있다. 특히 벌써 두 번째 ‘동아리 송년낭독회’를 준비해 강사인 나를 초대한 팀은 정말이지 감개무량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일게 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낭독 운운하는 건 진부하다. 늘 그런 것 말고 색다른 것을 찾아야 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특히 올해에 내 삶을 풍요롭게 한 것이 과연 있었다.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글쓰기에 대해 글 쓰자면 우습게도 할 말이 많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릴 적부터 글쓰기는 늘 만만하게 여겼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에 속했다. 책 한 권 내는 것? 나도 가능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늘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정말로 책을 출간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별별 글쓰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보았다. 열심히 참여했고 프로젝트는 유익했으나 책을 쓰지 못했다.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맘먹기가 다이어트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매일 몇 시간을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글을 써야만 글은 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정했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책을 내고 싶은 것이었다. 글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책을 낼 것인가. 글로 자신을 드러내고 글로써 자신을 치유하는 진한 경험이 글 쓰는 힘이 되고 그것이 그를 출간작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그저 글을 써보기로 했다. 짧든 길든, 어떤 주제든, 수필이든 일기든, 초고든 퇴고든 좌우지간 뭐라도 매일 썼다. 초고라는 말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투박한 글을 써 내려갔다. 어떤 날은 초고를 다시 검토하며 몇 문장 조금 고치고서 퇴고했다고, 글을 썼다고 뿌듯해했고, 어느 날은 단 한 문장을 써놓고 기뻐했다. 그 한 문장은 나의 진정성을 농축해 담은 것이었고 두세 낱말을 삭제하는 나름의 퇴고까지 거쳤으므로 그것은 흡족한 글이었다. 아, 글 쓰는 건 이런 건가. 그냥 쓰고 좋으면 되는 건가.
그러던 어느 날, 감정이 휘몰아치는 사연이 발생했다. 성질 많이 고쳤다고, 사람 돼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동요하고 있었고 시일이 흘러도 흘러도 평상심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요량으로 글을 썼다. 내면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 글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치부였으며, 누군가 보리라 생각했다면 지나치도록 진솔한 그런 글은 쓸 수 없었을 거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 우아한 마들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거나 앞뒤 없이 욕을 해대는 문장들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꾸미거나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을 뿐. 그러나 역시, 쓰고 보니 부끄러웠다. 화려한 화장을 지우고 칙칙한 민낯을 마주한 듯한 불편함. 그런데 속이 다 시원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믿을 만한 나에게 털어놓은 기분이었다. 비로소 호수의 파문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나를 만나는 시간이구나, 낭독처럼. 나를 드러내는 일이구나, 꼭 낭독처럼.
이전까지는, 썼으면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온라인 베이스캠프인 네이버 블로그, 혹은 브런치든 인스타그램이든 뭐든 아무튼 어디엔가 써먹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쓴 그 시간이 낭비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나에게 말을 거는 행위였으며 나 자신과 화해하고 친구가 되는 시간이었다.
이후로 나는 더 즐겁게 썼다. 글을 쓰면서 진솔하게 나를 표현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위로를 받았다. 여자들은 말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두 시간씩 통화하며 화풀이하곤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살아내느라 바빠졌고 나의 두서없는 하소연을 들어줄 여유가 없어졌다. 친구라고 해서 속을 다 털어놓기도 힘들게 되었다. 기막힌 하소연 들어주기를 힘들어하는 걸 모른 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그러고 나면 은근히 자괴감이 스멀스멀 일었기 때문이며, 이제는 서로 삶의 길이 너무나 달라져 공감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어떤 친구보다도 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는 나를 향해 글로 말했을 뿐 어느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았고 공감과 동정을 받으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위로받았고 희망을 얻었으며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때로는 해법을 찾았다. 아, 글쓰기는 나랑 노는 것이구나. 제법 할 만하구나.
내 안에서 무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음은 풍요로웠고 다시 나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실망하고 좌절했던 시간이 길었지만, 나를 채우고 나를 살리는 경험이 바로 글쓰기였다. 올 한 해 행복하고 감동하고 감사했던 많은 일들보다, 그 어떤 성과보다도 내 삶을 풍요롭게 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렇게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