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오래된 것들이 여전히 유지되어 가고 있다면 지켜야 한다.
시간의 배를 타고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들.
붙잡을 수 없이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운명인데,
그 속에서 여전하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문자와 함께 긴 걸음을 가고 있는 서예를
사람들은 왜 외면하려 할까?
서예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는 참 사랑스러운데,
그 매력을 어찌해야 오래 보게 할 수 있을까?
어느 가을날, 기차역 부근에 있다는 첨성대를 보러 갔다.
길가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그의 첫인상에 당황했다
다가가서 가만히 눈 마주치니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만질 수는 없도록 낮은 울타리로 막아 두었지만
얼마나 얕은지.
그 울타리는 저 첨성대를 위한 것인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함인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첨성대가 오롯이 서 있는 이유.
국보 제31호를 큰 보호막 없이 그냥 둔 이유를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과도하지 않은 지킴.
분명 이 시간도 지나가면 첨성대가 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일 테니.
하지만 지키는 방법이 아주 자연스러워야
더 오래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알려주는 첨성대를 보면서,
나는 과연 아티스트로서
내 작품과 감상자들의 인연을 잘 맺어주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작은 변화에도 과감하게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방식들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다를 것 없이
점차 노쇠해가는 나의 사랑하는 글씨들.
그들을 외면한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면,
과도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기로 했다.
순간순간 조금 변하면 어떤가.
그것도 모이면 내가 되고 삶이 되고 역사가 될 테니.
서예인 /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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