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의 조각들
1.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벽시계가 하나 있었는 데 뒷문 바로 위에 걸려 있는 정사각형의 짙은 갈색의 시계였다. 마치 그 색은 밀크 초콜릿과 같은 색이어서 나는 가끔 그것을 먹고 싶었다. 아마 먹었다면 내 기억에서 사라졌으리라.
2. 우리 집은 고추와 마늘을 파는 시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장 뒤로 똥물-더러운 그 물을 우리는 똥물이라고 불렀다-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고 그 개천 좌우로는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봄이 되면 고추시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버드나무 가지로 풀피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3. 그때만 해도 우리 할머니 집 근처는 논이었다. 여름만 되면 참메뚜기-먹을 수 있는 메뚜기-를 잡으러 논을 헤매고 다녔다. 메뚜기를 잡으면 프라이팬에 산채로 넣고 뚜껑을 닫아 튀겨 먹었다.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4. 나는 어릴 적 메뚜기가 참 맛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나는 엄마에게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를 싸 달라고 해서 가져갔다. 그때만 해도 점심시간에 선생님께서 돌아다니시며 도시락 반찬을 살펴보셨다. 내 반찬을 보시고는 이 맛있는 걸 혼자 먹냐며 등을 한대 툭 치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난 메뚜기 한 통을 선생님께 선물했다.
5.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코흘리개 시절 나는 우리 동네 달구라는 아이와 절친이었다. 하루는 놀러 나가는 데 한 살 차이 여동생이 따라와서 그냥 길거리에 두고 도망쳤다. 나는 동생이 집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난 동생을 잃어버렸고 그때 제천이라는 작은 도시는 내 동생의 이름과 인상착의가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방송으로 시끄러웠다. 저녁 늦게 동생을 찾았는데 내 동생은 어떤 집의 아주머니께서 키우시겠다며 옷을 싹 갈아입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고 아찔하다.
6. 우리 집에는 조개 혹은 작은 고동으로 만든 성 모양의 장식품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난 어릴 적 그 사진의 주인공이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 사진은 엄마와 무척 닮아 있었고 예뻤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예뻤다.
7. 난 어릴 적 겁이 엄청 많은 아이였다. 지금도 아니라고 말은 못 하지만… 동네에서 과자를 사서 먹으면서 집에 오다가 덩치가 엄청 큰 유기견을 만나 무서워서 과자를 다 주고 도망치듯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난 겁쟁이 었다.
8. 국민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제천이었고 외갓집은 영주였다. 나와 동생은 외갓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기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나는 그냥 동생이랑 둘이 가겠다고 당당히-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말했다. 엄마는 우리는 기차역까지 데려다줬고 영주에서는 외할머니께서 마중을 나오시기로 해서 나와 내 동생은 둘이 기차를 탔다. 조금 가다 보니 기차 안이 난리가 났다. 그 시절 꼬마 둘이 기차 여행을 한다는 건 당연한 관심의 대상이었고 결국 차장 아저씨가 오셔서 꼬치꼬치 물으시고는 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우리를 특실로 데려다주셨다. 우리는 특실에서도 구경거리였다. 난 그때 처음으로 기차에 특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두번째 프롤로그에서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작가의 소개를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소개글을 썼습니다. 평범하게 그리고 아주 일반적인 소개 보다는 나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이렇게 살았던 그리고 자랐던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 좀 더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삶의 공유 그리고 공감이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어린 시절의 단상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지금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