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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Oct 13. 2022

반갑지 않은 손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의 집에서부터 우리 집까지는 대중교통 기준 편도 5시간. 말도 없이 찾아온 그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을 알기에 마냥 무시하기에는 또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 그를 만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이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였다. 이를 설명하며 나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또 이번 한 번만 그러고 안 그러겠다며 딱 한 번만 나와달라고 했다. 그놈의 이번만..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그 말들.. 웃기시네. 또 그럴 거면서. 그는 끊임없이 계속 부탁하였고 나는 계속 거절하였다. 그대로 폰을 끄고 잘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그럼 '이번을 끝으로 다시는 안 그러겠다'그의 약조를 음성으로 녹음하고 만일 또 올라왔을 때엔 녹음본을 제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없이 올라와 이런 짓을 벌일 경우 이혼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불리한 조건을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이에 동의해서 유선상으로 '이번이 마지막이고 다시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올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내용을 녹음했고 나는 그를 만나러 내려갔다.


때는 겨울이었고 그는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기 싫은 걸 억지로 나갔으니 내 표정이 좋았을 리는 만무했다.


"얼굴 보여줬으니 이제 됐지?"


막차를 타고 내려가려면 그도 빨리 발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로 늦은 시간이었다. 그는 알았다고 말하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개인 카페에서 파는 수제쿠키였다. 내가 살면서 먹어 본 쿠키 중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인생 쿠키. 이걸 줄라고 한 번만 나와달라고 한 거였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쿠키상자를 받아 들고는 서둘러서 그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 쿠키상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데 시간이 애매한데 만약에 나 막차 놓치면 어떡해?"



'그걸 왜 나한테 묻니...'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실제로도 내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내 느낌이 맞다면 그의 속셈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같이 있어달라는 소리겠지. 하지만 나에게 더 이상 그 정도의 아량을 베풀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애도 아니고 네가 알아서 해. 역 근처에서 방을 잡아서 자든 찜질방에 가든 역 안에서 노숙을 하고 첫차를 타든 하면 되잖아. 나한테 묻지 말고."



"... 아... 그래?"



그는 긴말을 덧붙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고 조금 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막차를 놓쳤고 다시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 집 쪽으로 와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나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것이었고 괜한 시간낭비와 체력 낭비를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미 첫차 시간까지 따로 할 게 없어 그는 될 대로 되라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나는 나가지 않겠다는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했고 밤새 전화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려댈 게 뻔하기에 그를 수신거부 목록에 추가하고는 식탁에 앉아 소주병을 땄다. 이게 뭐진짜..


찜찜했다. 더는 선선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초겨울 날씨. 그는 이제 지하철 플랫폼에서 밤을 나고 내일 다시 내려가겠지. 하지만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왜 자기 멋대로 올라와가지고..'라는 식의 원망과 동정이 뒤섞인 감정을 느끼며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때 안방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자정이 넘어간 시간이었다. 지금 전화 올 데가 없을 텐데..? 느낌이 쎄했다. 잠에서 깨 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이 닫혀있었기에 정확한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왔고 정면 식탁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막 잠에서 깬 탓인지 통화내용 때문인지 엄마의 미간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엄마 누구였어?"


"00아 이게 무슨 소리니? 혼인신고를 했다고..?"


'... 이 미친 X..'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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