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최악의 방식으로 이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셨다.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에게 전화해서 따지려 들었을 때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누나가 거기서 노숙이라는 말을 꺼냈으면 안 됐어."
아무런 경우도 없이 제 멋대로 저지른 그의 행동에 가슴이 메일 정도로 분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그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더 이상 무엇을 숨기랴. 나는 귀국 한 지 3주 만에 엄마에게 혼인신고를 포함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었다. 엄마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않으셨다. 그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실 뿐이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나를 그렇게 믿어주셨는데. 자랑스러워하셨는데.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원하는 대로 하라고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는데. 그 믿음에 대한 결과가 이거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죄송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둘 사이에 놓인 식탁 표면만을 빤히 응시했다. 시야가 뿌예졌지만 차마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 진학도 취업도 이직도 인생설계도 심지어는 배우자 선택까지도 혼자서 척척 잘 해내는 똑똑하고 잘난 딸이었고 그렇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그래야만 했다. 엄마는 내가 네 살이 되던 해 아빠와 이혼 후 나와 내 남동생을 혼자의 힘으로 키워오셨다.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었으면 안 됐다.내가 이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인 줄도 몰랐다. 나는 더이상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이 끔찍한 상황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만 같았고 영영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조차도 나를 못 믿는 상황에 이런 나를 채용해줄 회사는 없을 것이고 나는 평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엄마 품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0대가 되어도 40대가 되어도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도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그렇게 나이만 먹어갈 것이다. 30년 가까이 혼자서 자식 둘을 키워온 결과가 이거라니. 혼자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후 스스로 서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고장 나버린 맏딸...그리고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알바를 전전하며 독립할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이는 작은 아들...
'엄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의 전화통화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이 사실을 알기까지 그 후로도 며칠 아니 몇 주 아니 몇 달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일찍 이 얘기를 표면 위로 대신 꺼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